[창간특집/문화도시 서귀포]사람이 자원이다

[창간특집/문화도시 서귀포]사람이 자원이다
서귀포 기억 품은 공간 이젠 주민들이 가꾼다
  • 입력 : 2015. 04.22(수)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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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산책길에 설치된 이탈리아 조각가 마우로 스타치올리의 '서귀포'.

원도심과 작가의 산책길 활성화 취지
지역주민협의회 이달부터 본격 활동
인프라 아닌 소프트웨어에 방점 찍고
지속가능한 도시의 앞날 그려갈 예정

서귀포의 한기팔 시인은 노래했다. '서귀포(西歸浦)에 와서는/ 누구나 한 번은 울어버린다/ 푸른 바다가 서러워서 울고/ 하늘이 푸르러서 울어버린다.' '서귀포에 와서는'이라는 시의 일부다. 서귀포라는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울렁인다는 사람들을 본다. 제주섬, 남녘땅 서귀포는 오래전부터 켜켜이 쌓여가는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눈부신 자연 배경 창작 모티프 제공=짙푸른 물결 일렁이는 서귀포 앞바다, 섬의 한가운데 솟아있는 한라산, 깎아지른 바위를 세차게 가로지르는 폭포.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지역은 종종 문화예술의 도시라는 말이 뒤따른다. 서귀포도 예외가 아니다. 서귀포가 품은 자연은 이 섬을 거쳐간 많은 이들에게 창작의 모티프를 제공했다.

그래서 '문화도시 서귀포'는 낯설지 않다. 국비 지원을 받아 올해부터 5년 동안 문화도시 조성 사업을 추진하지만 이미 서귀포시는 다른 지역을 뛰어넘는 문화 인프라를 갖췄다. 서귀포시내에 있는 공립미술관은 이중섭미술관, 기당미술관, 소암기념관 등 3개나 된다. 지난 한해 이들 공립미술관을 찾은 관람객은 약 27만명에 달한다. 2015년 3월말 기준 서귀포시 동지역 인구 9만1223명의 3배에 가까운 인원이다.

'전통적인' 문화기반시설인 미술관, 문예회관(서귀포예술의전당)만이 아니라 작가의 산책길, 솔동산 문화의거리, 문화예술시장 등 서귀포 도심엔 문화의 향기를 피워올리는 공간이 곳곳에 흩어져있다. 하지만 문화도시의 성패가 그저 공연장, 미술관, 문화의 거리 같은 시설의 크고 작음으로 가늠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숫자로 문화도시의 '우열'을 가렸다면 서귀포시는 일찌감치 '우등생'이 되고도 남았다.

칠십리시공원 유토피아 갤러리.

▶문화시설 느는 만큼 공감대 키워야=문화도시에 생명력을 더하는 이들은 결국 서귀포에 발딛고 서있는 사람들이다. 도시의 건축물이 그동안 짓고 부수고를 수차례 반복해왔지만 그곳에 살아온 사람들의 기억은 쉬이 끊어낼 수 없지 않은가. '원도심 활성화와 작가의 산책길 활성화를 위한 지역주민협의회'에 기대를 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송산동, 중앙동, 천지동, 정방동 등 서귀포시 원도심을 중심으로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문화도시를 조성해보자는 뜻으로 꾸려진 지역주민협의회는 마을 단위의 문화공동체를 통해 지속가능한 서귀포 문화를 가꾸는 활동을 펼치게 된다.

서귀포시에 문화 인프라가 늘고 있지만 지역의 특색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성이 지역주민협의회 운영의 출발점이다. 솔동산 문화의 거리에 큼지막하게 세워진 일부 뜻모를 조형물, 동네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여기저기 훼손된 작가의 산책길 미술품 등 적지않은 예산을 들인 사업인데도 지역의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사례가 늘어가고 있어서다.

지역주민협의회는 국내외 작가가 참여해 40여점의 설치 작품을 뿌려놓은 작가의 산책길을 거닐며 이야기를 입히는 작업에 나선다. 나무, 돌, 철근콘크리트, 청동 등 미술품을 감싸고 있는 딱딱한 재료 너머에 있는 서귀포 사람들이 못다 말한 사연을 불러내는 일이다. 서귀포 지역 청소년들은 서포터즈로 활용해 세대를 잇는 기억의 전승을 꾀하기로 했다. 산책길 투어가 좀 더 풍성해질 듯 하다.

주말 이중섭거리에 활기를 더하고 있는 문화예술시장은 지역 상권 등과 연계해 야시장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수공예품 판매 등을 통해 도심을 오래도록 불밝히며 체류형 관광지로 서귀포 방문객들의 만족도를 높여갈 계획이다. 이와관련 작가의 산책길과 문화예술시장을 이으며 관람객 눈높이에 맞춘 프로그램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중섭거리에 있는 옛 서귀포관광극장(오른쪽). 영화 상영만이 아니라 학예회나 집회 장소, 공연장 등으로 쓰였던 서귀포관광극장이 지역주민이 주도하는 생활 속 문화공간으로 새롭게 문을 연다.

▶옛 서귀포관광극장 운영 첫 발=첫 사업은 4월말부터 시작되는 옛 서귀포관광극장 운영 프로그램이다. 현재 이중섭거리에 쓰임새를 잃고 외로이 서있는 서귀포관광극장은 서귀포 사람들이 때마다 찾는 곳이었다. 단순히 영화를 상영하는 일만이 아니라 각급 학교 학예회, 문화 공연, 집회 장소로 널리 애용해왔다.

지역주민협의회는 회원들이 머리를 맞대 발굴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서귀포관광극장을 예전처럼 원도심 사람들이 부담없이 드나드는 생활 속 공간으로 끌어갈 예정이다. 별빛이 흐르는 영화관, 서귀포 문인들과 함께하는 시 낭송회, 클래식에서 인디밴드까지 넘나드는 음악회, 여러 빛깔의 전시 등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단체와 손을 잡고 텅빈 공간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이달 25일에는 옛 서귀포관광극장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행사가 열린다. 오후 2시 길거리 마술 공연을 시작으로 제주지역 인디밴드인 남기다밴드 공연, 음악과 함께하는 시낭송, 서귀포시 초·중·고 학생들로 구성된 쁘로빠체소년소년합창단 연주회, 가람과 뫼 초청 무대 등 연령을 뛰어넘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준비됐다.

장병순 지역주민협의회장은 "서귀포시 지역에 문화 시설이 많아지고 매년 행사가 증가하고 있지만 정작 지역 주민들의 참여는 미미한 편"이라며 "앞으로 지역문화에 관심있는 회원을 추가 영입하는 등 주민들과 만들어가는 문화도시가 되도록 내실있는 활동을 벌여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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