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경쟁력 제주가 답이다](5)슬로아일랜드 '가파도'

[느림의 경쟁력 제주가 답이다](5)슬로아일랜드 '가파도'
청보리처럼 느릿느릿 걷는 섬
  • 입력 : 2015. 04.23(목) 00:00
  • 이현숙 기자 hslee@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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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벌써 일곱번째인 청보리축제가 5월 10일까지 열리고 있다. 섬 안을 걸을 때는 시계를 보지 않고, 목표 없이 그저 걷는 것이 상책이다. 강희만기자

드넓은 청보리밭을 걷다보면
초록빛·하늘빛·물빛에 취해
시간여행 떠난듯 착각에 빠져

시간에 쫓기지 않고 그저 마음 편히 걷고 싶을 때 찾으면 찾은 곳이 어딜까. 섬이 아닐까. 걷다가 지치면 아무 곳이든 앉아 흐르는 땀을 닦고 바람의 숨결을 오감으로 느끼고 초록빛·하늘빛·물빛에 취할 수 있는 제주의 섬. 그 이름은 '가파도'이다.

가파도는 드넓은 청보리밭을 달팽이처럼 느리게 걸어보고 싶은 섬이다. 봄이면 섬은 온통 청보리 물결이다. 무려 56만1000㎡의 들판에 청보리가 출렁인다. 유채꽃과 보리밭이 어우러진 길을 걷다 보면 여행자는 시간여행을 떠나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가파도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모슬포 남쪽 바다에 있다. 최남단 마라도 사이에 있는 섬으로 대정읍 모슬포항에서 5㎞ 떨어진 곳에 있다. 최고봉은 약 20m로 구릉이 거의 없이 평탄하며 해안은 대부분 암석해안을 이루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남사록' '지영록' 등에는 '개도(盖島)'라고 했다. '탐라지'에는 '개파도(盖波島)', '제주삼읍전도'에 '가파도(加波島)', '대동여지도'에 '개파(盖波)', '조선지형도'에 '가파도(加波島)'라고 나와 있다. 지명 유래는 섬이 가오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가파섬'이라 했다는 설, 파도가 섬을 덮었다는 뜻에서 '가파도'라는 설, 물결이 더한다는 뜻에서 '가파도'라 했다는 설 등이 있다.

5월10일까지 청보리축제가 열리고 있는 가파도.

가파도는 높은 건물이 없다. 그래서 섬의 어느 지점에서도 바다를 볼 수 있어 눈이 시원하다. 섬은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이면 족할 정도로 작다. 조금이라도 청보리밭에 더 오래 머물고 싶다면 가파도에서는 달팽이처럼 느리게 걸어야 한다. '탄소 제로'의 슬로아일랜드로 변하면서 힐링 관광지로 인기를 얻고 있다. 역사유적지도 많다. 가파도 고인돌과 할망당 등은 제주문화의 옛 모습을 가늠할 수 있다. 보리밭을 한아름 품고 있는 가파초등학교의 벽화도 아기자기하면서 이쁘기 그지없다.

가파도는 무궁무진한 가치가 있는 '보물섬'이다. 우도·마라도의 명성(?)에 비하면 유명세는 부족한 감이 있지만 가파도는 우도·마라도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바로 '느림'의 길이다. 그래서 마을에서도 인위적 손길을 가미하기 보다는 자연스러움, 그리고 가파도다운 것을 찾아 보존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가파도 상동에 있는 우물.

가파도는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카본 프리 아일랜드(Carbon Free Island)'인 녹색 섬으로도 변화하고 있다. 지금 가파도는 청보리 물결이 넘실대고 있다. 올해로 벌써 일곱번째 청보리축제가 5월 10일까지 열리고 있다.

섬 안을 걸을 때는 시계를 보지 않고, 목표없이 그저 걷는 것이 상책이다. 낭만을 즐기고 싶다면 자전거 하나 빌려 두바퀴로 가다가 잠시 내려 보리밭을 응시하면 된다. 조바심을 낼 이유가 없다. 성큼성큼 걸으면 이내 섬 한 바퀴를 다 돌고 만다. 느릿느릿 걸으면 간지럽히는 바람결까지 누릴 수 있다.

'느림이 행복이다'라는 가치를 내건 청산도의 푸른 물결 못지 않은 곳이 가파도이다. 그러다가 몇개 없는 식당에 들러 성게국이나 성게칼국수, 해산물정식을 맛보면 바다내음이 입속으로 들어온다.

가파도의 보리는 무농약으로 키워지고 있다. 93세대(177명 거주) 가운데 37세대가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하고 전기오토바이·전기차가 일반화 됐다. 전신주도 지중화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몇 년 전 마을 차원에서 환경보존과 마을 간 반목을 경계해 조례를 만들어 마을의 공익적 사업 외에는 건축물 신축을 억제하고 있다. 제주도에서 가파도를 일본 나오시마와 같이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명품섬을 만들겠다는 '가파도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나서 2013년부터는 갑자기 마을 땅값이 폭등했지만 그것이 섬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지 않는다는 것을 주민들은 이미 알고 있다.

진명환 가파리 이장 "자연경관 조례 제정"

진명환 이장

"누구든지 '보리밭의 추억'은 하나쯤 있을 겁니다. 그 추억을 간직한 이들이 섬을 찾아 '바람 불면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보리의 생명력'을 느끼고 진정으로 힐링하는 섬이 되길 바랍니다."

'슬로아일랜드'의 이장은 확실히 달랐다. 조급하지 않았다.

"우도가 유명세를 타면서 100만명이 찾을때 가파도를 찾는 이들은 1만명에 불과했다"는 그는 "지금은 3년동안 각각 8만명, 10만명, 12만명으로 늘고 있지만 방문객 숫자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섬의 자연경관을 훼손시키지 않는 것'이다. 가파도를 '탄소없는 섬'으로 추진한 것도 이같은 마을리더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 이장은 "오는 27일 제주도의회에서 가파도 자연경관을 지키기 위한 조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며 "섬을 찾은 이들이 진심으로 다시 찾고 싶은 섬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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