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안돼, 멈춰'라는 관광1번지

[백록담]'안돼, 멈춰'라는 관광1번지
  • 입력 : 2015. 05.11(월)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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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풀이 짙은 연둣빛으로 물든 숲길을 얼마간 걸었더니 저 멀리 바위절벽이 나타났다. 교과서를 통해 익숙한 이름인 반구대암각화가 새겨진 곳이었다. 울산광역시 울주군의 반구대암각화는 고래, 호랑이, 멧돼지, 배, 그물, 사람 얼굴 등 300여가지 그림이 그려진 선사유적이다.

국보로 지정된 반구대암각화는 쉬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인근에 댐이 들어서 수십년 동안 물이 차고 빠지는 과정이 반복되며 원형이 크게 훼손된 탓이다. 망원경을 통해 멀찍이 있는 암각화를 들여다봤지만 좀체 구체적 형상을 보기 어려웠다. 일일 해설사가 되어준 울산의 지인에게 툴툴거리며 돌아오는 길, 울산암각화박물관에 들렀다. 그곳에서 반구대암각화 복제모형물로 실물의 진면목을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랬다.

얼마전 봤던 반구대암각화의 기억이 떠오른 것은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 천제연폭포를 방문했을 때였다. 폭포 주변을 둘러볼 일이 생겨 입구로 향하다 발길을 멈추게 만든 안내문 때문이다. 거기엔 '유모차·휠체어 통행 못함'이란 큼직한 글귀가 적혀있었다.

폭포까지 가 닿으려면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고 내려야 한다. 관람로 구조상 휠체어 사용 장애인의 통행이 어렵고 만일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대책이란 걸 이해하면서도 그같은 단점을 덜어줄 장치는 없었을까란 물음이 생겼다. 널찍한 천제연 주차장에 휠체어가 그려진 장애인 주차구역을 갖추고 휠체어가 드나들 수 있는 화장실을 설치했지만 정작 휠체어 장애인들은 관광지에 입장할 수 없지 않은가. 사전에 이런 정보를 몰랐던 사람들은 한해 80만명 넘게 찾는다는 유명 관광지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할 처지다.

천제연폭포를 돌아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여미지식물원 인근 또다른 천제연폭포 매표소로 출입할 경우 휠체어 장애인들이 선녀다리(선임교)를 건너지 않아도 폭포와 한라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로 향할 수 있도록 시설을 보완할 수 있지 않을까. 휠체어 장애인들이 선임교 어디쯤에서 폭포 일대를 조망할 방법은 없을까. 그도 아니면 휠체어나 유모차 이용 방문객들이 폭포를 가깝게 보지는 못하더라도 자유롭게 입장해 편한 자리에서 주변 경관을 감상할 수 없는 걸까.

2013년 제주도장애인총연합회가 서귀포시 직영관광지 7곳을 대상으로 장애인 편의시설 실태조사를 벌인 적이 있다. 당시 정방폭포, 천지연폭포, 천제연폭포, 주상절리대, 용머리해안, 산방산, 감귤박물관에 대한 조사에서 대부분 장애인이 이동하기 어려운 계단으로 되어 있거나 휠체어를 타고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제주도장애인총연합회는 조사 결과를 서귀포시에 알렸지만 정책 반영은 더딘 것 같다. 천제연폭포의 경우도 달리 방법이 없다거나 예산 문제를 이유로 손을 쓰지 않고 있다.

서귀포시는 흔히 '관광 1번지'라고 불린다. 하지만 유모차·휠체어는 통행 못한다거나 휠체어는 자동차에 보관하고 오라는 식이라면 관광 1번지를 내세우는 일이 부끄러워 보인다. 휠체어나 유모차를 이용하는 제주도민이나 관광객들이 관람에 불편을 겪는다면 다른 노약자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통행 금지 대상이 비단 휠체어나 유모차 이용자에게만 해당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애써 발디딘 손님에게 '안돼, 멈춰'라고 접근조차 막아버리면 되나 싶다. <진선희 제2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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