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안녕하십니까](9)장밋빛 이주는 없다

[제주살이, 안녕하십니까](9)장밋빛 이주는 없다
낭만이 아닌 현실… 풍광좋은 제주땅도 똑같은 삶의 현장
  • 입력 : 2015. 06.18(목)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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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가 선정한 우수관광사업체에 포함된 민박·펜션·게스트하우스의 모습들. 농어촌민박은 이주민들이 선호하는 창업 분야 중 하나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귀농보다 귀촌인 많은 제주이주 경향
농어촌민박·카페 해마다 큰 폭 증가
거침없는 제주이민 앞 냉정한 현실
성공만큼 늘어가는 실패 눈여겨봐야


서귀포시 안덕면의 어느 마을. 평일인데도 알록달록 아웃도어를 입고 마을을 누비는 이들이 있었다. '제주올레길'이 만들어지면서 한적한 마을 안길을 휘휘돌아 포구까지 이어지는 동네를 거닐고 구경하는 관광객들의 모습이다. 마을 탐방객이 증가하면서 자연스레 묵을 곳, 먹을 곳도 생겨났다. 이 마을에 있는 농어촌민박 업소는 49곳에 이른다. 294세대가 사는 마을이라는 점을 떠올려볼 때 적지 않은 규모다. 지금도 마을 여기저기 공사가 한창이었다.

▶커피전문점 3년새 세갑절 이상=자고나면 수치가 올라가는 제주 이주민들의 숫자만큼 농어촌민박, 커피전문점 같은 업종의 증가폭도 크다. 이는 귀농보다는 귀촌인이 많은 제주 이주의 경향을 드러낸다. 농사를 짓지 않고 제주 생활을 이어가는 방식으로 선택하는 대표적 창업 아이템이라는 점이다.

농어촌민박은 농어촌 지역 주민이 직접 거주하는 집이나 연면적 230㎡ 미만의 단독주택 또는 다가구주택을 일컫는다. 이같은 조건 아래 펜션, 민박, 게스트하우스 같은 이름을 달고 영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서귀포시 읍면동 지역의 농어촌민박수는 947곳에 달한다. 유명 관광지가 흩어져있는 안덕면의 또다른 마을 한곳에만 64곳이 몰려있다. 이중 서귀포시 지역 신규 사업자를 보면 2012년 81곳이었지만 2013년 110곳, 2014년 172곳으로 2년새 갑절 이상 늘어났다.

커피전문점은 어떨까. 신규 업소를 포함해 2012년 서귀포시 읍면동에 있는 커피전문점은 61곳이었다. 올해는 6월 4일 기준으로 192곳이 영업중이다. 2013년 92곳, 2014년 142곳으로 해마다 큰 폭으로 증가한 결과다.

▶"차별화 안되면 살아남기 어려워"=올해로 5년째 서귀포시 동홍동에서 게스트하우스 '쿨쿨'을 운영하는 신승훈씨. '게스트하우스 1세대'로 자신을 소개한 신 대표는 그동안 게스트하우스가 1년마다 수십 곳씩 들어서는 걸 지켜봤다.

전원생활을 하며 돈벌이까지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주민들이 이 분야 창업을 꿈꾸지만 1년 내내 쉬는 날이 없다시피하고 주말에 더 바삐 움직여야 하는 일이 게스트하우스 운영이다. 그는 농어촌민박 창업을 염두에 둔 이주민들에게 기회있을 때마다 이런 말을 한다고 했다. "차별화된 콘텐츠를 갖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렵다."

서귀포시 동지역을 기준으로 2012년부터 최근까지 폐업한 농어촌민박 업소는 59개로 나타났다. 읍면까지 합치면 그보다 많을 것이다. 같은 기간 서귀포시 읍면동 지역을 합쳐 문닫은 커피전문점은 27곳으로 집계됐다.

▶거침없는 제주행 대신 신중한 준비를=제주섬 곳곳에 양적으로 팽창하고 있는 게스트하우스나 커피전문점은 제주 이주의 '그늘'을 보여주는 풍경이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그리며 '낭만 제주'에 짐을 풀어놓았지만 그들 앞에는 냉정한 현실이 놓여있다. 어떤 이들은 몇년 안돼 영업을 접거나 제주를 떠난다. 제주 이주민으로 살아갈 앞날에 장밋빛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거침없이 제주이민'을 택한 이들의 성공을 들여다보는 만큼 실패도 눈여겨봐야 한다.

'제주 이주자 15인 행복 인터뷰'라는 부제가 달린 책이 있다. 3년전에 출간됐는데 이주민들 사이에 널리 읽혔다는 책 중 하나다. 그 안에 사연이 담겼던 이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들이 꿈꿨던 제주생활을 이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이들은 제주가 아닌 다른 곳에서 새로운 삶을 일구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주민으로 살아가는 누군가 말했다. 번잡함에 치이는 서울을 떠나 제주행을 택한 이들에게 이즈음의 삶은 대도시와 다를 바 없는 '전쟁터'일 것이라고 말이다. 쟁쟁한 이력을 가진 이주민들이 모여들고 땅값이 하늘높이 치솟는 현실을 보며 제주에서 살아가는 법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거라는 얘기였다. 거침없이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게 아니라 돌다리를 두드리는 심정으로 제주 이주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인지 모른다.

낯설고 물설은 곳, 무얼하며 살까
서귀포시 창업아카데미에 이주민 몰려
심화과정 SNS마케팅교육도 발길 꾸준

넉넉한 자연 안에서 느린 삶을 살아가겠다는 마음으로 제주 이주를 결심하지만 생계 걱정을 내려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꿈에 부풀었던 제주살이의 명암이 갈리는 순간도 이 무렵이 아닐까 싶다.

낯설고 물설은 제주땅에서 무얼하며 살아갈까. 제주 이주민들이 그같은 고민을 안고 발길을 돌리는 곳 중 하나가 예비창업자를 대상으로 개설한 서귀포시 성공창업아카데미다.

서귀포시가 성공창업아카데미 심화과정으로 마련한 SNS마케팅 교육.

서귀포시 성공창업아카데미는 귀농귀촌인을 겨냥해 운영되는 프로그램은 아니다. 하지만 귀농귀촌인의 참가율이 꽤 높다. 서귀포시가 수강 신청할 때 별도로 귀농귀촌 여부를 파악한 결과에 그런 점이 드러난다.

지난해 5월 열린 성공창업아카데미에선 27명의 수강생 중 10명이 귀농귀촌인으로 집계됐다. 제주지역 창업시장 동향, 정부 지원 시책, 상권 분석과 입지 선정, 사업장 홍보, 부동산 실무계약 등을 내용으로 진행된 강좌였다. 심화 과정으로 마련된 SNS마케팅 교육도 전체 수강생의 30% 가량이 귀농귀촌인이었다.

올해는 그 열기가 더 높았다. 지난 2월 마무리된 성공창업아카데미는 26명 중 19명이 귀농귀촌인으로 나타났다. 서귀포시는 초반부터 신청자가 몰려들자 3월에도 20시간 과정으로 성공창업아카데미를 열었는데 이때도 28명의 수강생 중 귀농귀촌인이 17명으로 절반을 크게 웃돌았다. 서귀포시는 하반기에도 전년처럼 심화과정으로 소규모 자영업자를 위한 SNS마케팅 교육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주민들이 관심을 보이는 창업은 농어촌민박, 커피전문점, 농수산물 유통 등 몇몇 분야에 쏠려있다. 그런 만큼 살아남기 위한 경쟁도 치열할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제주 이주민을 여럿 인터뷰해 실은 어느 책에는 "설령 실패로 돌아간다 할지라도 (제주에) 와서 얻는 게 클 거"라고 말하는 이가 있었다. 제주 이주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시기에 실패 사례도 하나둘 드러나기 마련이다. 제주 역시 우리 땅의 어느 곳과 다르지 않은 치열한 삶의 현장 아닌가. 누구든 치유하고 보듬어줄 것 같은 제주살이에도 쓰라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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