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곶자왈의 재발견, 세계인의 보물로](5)곶자왈의 지질연구 (상)

[제주 곶자왈의 재발견, 세계인의 보물로](5)곶자왈의 지질연구 (상)
지질학자들의 연구 곶자왈 비밀 드러나
  • 입력 : 2015. 07.13(월) 00:00
  • 강봄 기자 spring@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선흘곶자왈에는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동백동산 습지 외에 여러 개의 소규모 습지들이 분포하고 있다.

곶자왈은 독특한 생태계가 유지되고 보존가치 높은 곳
과거 버려진 땅으로 취급돼 정밀한 지표지질조사 시급


제주도 곳곳에는 나무와 덩굴이 빽빽하게 우거지고 크고 작은 암괴들이 불규칙하게 흩어져 있는 탓에 사람이 출입하기 어려운 지역이 많다. 돌이 많고 빈약한 토양으로 인해 농사를 지을 수 없어 과거 버려진 땅으로 여겨졌으며, 제주사람들은 이를 '곶자왈'이라 일컬었다. 그러나 최근 지질학자들의 오랜 연구 끝에 제주도 곶자왈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지질조사 등을 통해 이러한 암괴들이 두껍게 쌓여 있는 곶자왈 지역이 빗물이 유입되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독특한 미기후(microclimate, 微氣候. 대기와 다른 지표 가까운 곳의 기후)가 유지되고 있어 많은 생물들의 서식지가 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곶자왈의 지질학적 어원

곶자왈의 정의는 시대에 따라 약간씩 그 의미가 달랐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조선시대 고지도인 제주삼한도, 제주삼읍총지도, 제주 삼읍전도, 탐라순력도 등에 '곶(藪. 늪 수)'이라는 용어가 존재했던 사실로 미뤄 이미 오래 전부터 사용돼 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곶자왈'은 제주어(語)로서 독립적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본래 '수풀'을 뜻하는 '곶'과 돌과 자갈들이 모인 곳을 뜻하는 '자왈'의 합성어다.

1976년에 발행된 농촌진흥청 보고서의 곶자왈 정의에 따르면, '스코리아류 또는 화성쇄설류에 의해 운반된 자갈과 화구로부터 방출된 화산탄 및 화산자갈이 뒤섞여 쌓인 각력층' 또는 '암설류의 양상을 보이는 암괴상 아아 용암류의 특성을 보이는 지역'으로 정의했다.

신평곶자왈은 대체로 평탄한 용암대지 위에 분포하고 있으며, 부분적으로 완만한 구릉들이 솟아 있다.

또한 북제주군지에서는 '가시덤불과 나무들이 혼재한 곳'으로 적고 있고, 2009년 제주어 사전에는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헝클어져 수풀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독특하고 다양한 생태계가 유지되면서 보존가치가 높은 지역으로 인식되고 있는 곳'으로 곶자왈 지역을 정의하고 있다.

이처럼 곶자왈 지역의 정의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원인은 지질학적 연구결과에 의해서다.



▶곶자왈의 지질학적 연구

지금까지 이뤄진 곶자왈에 대한 지질학적 연구에 따르면, 곶자왈을 만든 용암류는 송시태 박사의 연구결과(2000년)가 가장 일반적으로 통용돼 왔다.

이 연구에서 송 박사는 "제주도에서 곶자왈이라 부르는 곳은 암괴상 아아 용암류가 분포하고 있는 지대이며, 이 용암류들을 곶자왈용암류라고 부르고자 한다"라고 제안했다.

특히 송 박사는 곶자왈용암류가 분포하는 곳을 크게 4개 지역으로 나눴다. 한경-안덕 곶자왈지대, 애월 곶자왈지대, 조천-함덕 곶자왈지대, 구좌-성산 곶자왈지대가 그 곳으로, 지금의 '4대 곶자왈'이다.

송 박사의 이 같은 연구 결과를 계기로 처음으로 곶자왈의 지질학적 특성이 보고됐으며, 일반인들도 곶자왈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다.

그러나 이 연구는 자연·인문·지리적인 면이 배제된 채 지질학적인 측면만이 고려됐다는 문제점을 낳았으며, 특히 '곶자왈용암=아아 용암'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면서 뒤이은 지질 연구의 도화선이 됐다.

저지곶자왈 내 일부 함몰된 지형을 따라 소규모 물웅덩이들이 분포하고 있다.



▶최근 동향

그러나 최근 조사 결과 곶자왈을 구성하는 용암류가 암괴상 아아 용암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점성이 낮은 파호이호이 용암류 분포지역에서도 곶자왈이 형성되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더불어 2차적인 풍화과정을 통해서도 형성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제주도 곶자왈 지역에 대한 지질학적 고찰(2012년. 전용문, 안웅산, 류춘길, 강순석, 송시태)에 따르면, 신평·저지·선흘·수산 곶자왈지역의 경우 공통적으로 투물러스(용암언덕)와 붕괴도랑, 용암함몰구, 용암동굴 등이 존재한다. 또 두께가 얇은 용암류가 누적돼 있고, 용암 표면에 밧줄구조가 발달하고 있어 전형적인 파호이호이 용암류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함께 지형적으로 위로 볼록하게 솟은 용암언덕 표면에 발달한 절리를 따라 암괴들이 쉽게 떨어져 나와 느린 속도로 지면을 따라 이동하면서 암괴들로 뒤덮인 곶자왈지대를 만든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이러한 해석은 지금까지 곶자왈지역이 1차적인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다는 내용과 달리 2차적인 기후변화와 계절적 동결쐐기(파쇄) 작용에 의해서도 만들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더불어 2013년 곶자왈 연구 결과(박준범 외)를 살펴보면, 하나의 곶자왈 지대를 이루는 용암류의 표면적 특징이 아아 용암, 파호이호이 용암, 전이 용암류들로 구성돼 있으며, 이들이 섞여있는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 등 그 구체적인 비율이 보고된 바 있다.

이처럼 여러 지질 연구자들에 의해 곶자왈에 대한 지질학적 연구들이 진행됨에 따라 곶자왈의 지질학적 정의는 '용암의 조성 및 성인(成因)에 상관없이 암괴들이 불규칙하게 흩어져 분포하고 있으며, 독특한 생태계가 유지되고 있는 보존가치가 높은 지역'으로 재정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제언을 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지질 전문가들은 "보다 정확한 곶자왈지역의 성인 규명을 위해서는 정밀한 지표지질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저지곶자왈은 완만한 용암대지 위에 지면에서 1~5m 높이로 솟아 있는 언덕지형이 곳곳에 발달하고 있다.



- 지질용어정리 -

 ▶화성쇄설물(pyroclast)=화산활동에 의해 화구로부터 분출되는 파편상 고체물질의 총칭.

 ▶화성쇄설류(pyroclastic flow)=여러 종류의 화성쇄설물이 한 무리가 되어 수평방향 또는 산 하류방향으로 중력에 의해 고속으로 지표면을 흘러 내려가는 현상. 화산쇄설류 또는 화쇄류라고도 한다.

 ▶스코리아(scoria)=용암이 분수처럼 뿜어져나와 굳어진 암석. 일반적으로 구멍이 많고 붉게 산화된 것이 특징으로 제주도의 '송이'가 이에 해당된다.

 ▶암설류(debris flow)=가파른 사면에 쌓여있던 암석들이 사면을 따라 한꺼번에 흘러내려가는 흐름.

 ▶아아 용암(Aa lava)=꿀처럼 점성이 높은 용암의 일종으로, 느리게 흐르면서 표면이 깨진 특징을 가진 용암. 제주도의 '용두암'이 대표적이다.

 ▶파호이호이 용암(pahoehoe lava)=점성이 낮아 넓게 퍼져 흐르는 용암으로, 제주도의 넓고 평평한 '빌레'지대를 만들었다.

 ▶전이 용암(transitional lava)=파호이호이 용암과 아아 용암의 중간적인 특성을 보이는 용암. 아아 용암보다 점성이 낮고, 파호이호이 용암보다 점성이 높다.

 ▶투물러스(tumulus. 용암언덕)=용암이 지표를 흘러갈 때 앞부분(전단부)이 식는 과정에서 굳어지면서 용암이 앞으로 흘러가지 못하고 부풀어 올라 만들어진 작은 언덕지형.

 ▶붕괴도랑(collapse trench)=용암동굴이 만들어진 지역에서 동굴의 천정이 무너져 내린 오목한 계곡모양의 지형. 거문오름의 경우 분화구 북쪽을 뚫고 나간 용암이 14㎞ 떨어진 해안까지 흘러가는 과정에서 일부 구간에 좁고 깊은 계곡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붕괴도랑이다.

 ▶밧줄구조(ropy structure)=용암이 흐르며 굳은 표면이 밧줄 모양으로 주름져 만들어진 구조. 점성이 낮은 용암이 얇게 퍼져 흘러갈 때 용암의 표면이 먼저 굳어진다. 이때 내부 용암은 뜨거운 상태로 계속 흘러가려는 성질이 있어 표면에 주름이 만들어지는데, 모양이 마치 밧줄(로프)모양과 같아 이 같이 불린다. 파호이호이 용암에서 흔히 생긴다.

 ▶동결쐐기(파쇄)작용(frost wedging action)=암석의 틈 사이에 들어간 물이 얼어 부피가 팽창, 외부로 압력을 가하는 쐐기작용에 의해 암석이 파괴되는 현상. 물리적 풍화작용의 하나로 동결파쇄작용이라고도 한다. 한라산 백록담의 남벽이 부서지는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4855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