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시작하며] 다른 모든 것을 잊게 하는 달

[하루를 시작하며] 다른 모든 것을 잊게 하는 달
  • 입력 : 2015. 08.05(수) 00:00
  • 뉴미디어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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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제주의 여름은 유난히 덥다. 이제 팔월도 이 더위와 한동안 씨름을 해야만 한다. 그런데 인디언 쇼니족 추장 테쿰세의 메시지와 쇼니족이 명명한 팔월의 이름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자리에서 일어나면 아침 햇빛에 감사하라. 당신이 가진 생명과 힘에 대해 당신이 먹는 음식에 대해, 생활의 즐거움에 대해 감사하라. 만일 당신이 감사해야 할 아무런 이유를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신의 잘못이다"는 테쿰세의 말이다.

쇼니족들에 의하면 팔월은 '다른 모든 것을 잊게 하는 달'이라고 한다. 원래 오하이오를 근거로 살아가던 인디언 쇼니족들이 생각했던 팔월의 이름이다. 문명에 의지하며 혹은 맹목하며 살아가는 요즘 오래전 문명 앞에서 맥없이 스러져갔던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가졌던 인식들을 생각하며 위로와 평안을 얻을 때가 있다. 이것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신기한 일이다.

'다른 모든 것을 잊게 하는 달', 쇼니족들이 가지고 있었던 인식의 영역을 온전히 알아낼 수는 없다. 다만 나를 보고 사람들을 생각하며 더 나아가 세상을 그려보는 지평 속에 팔월의 이름은 충분히 의미로 작용할 것만 같다. 쇼니족들이 백인과의 전쟁으로 삶의 터전을 잃고 뿔뿔이 흩어지기 전으로 돌아가 보면 팔월에 명명된 이 뜻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을까. 자연 파괴의 주범인 백인들과 전쟁을 불사했던 추장 테쿰세가 남긴 말의 의미를 곱씹다 보면 조금의 시사를 얻을 수 있을까.

구조의 맥락으로 생각한다면 '다른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어떤 하나'와 대응을 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하나'의 정체가 무엇이며, '다른 모든 것'의 정체들은 무엇이냐이다. 인류의 가슴에는 통성이라는 것이 있어서 미루어 짐작하는 일이기는 해도 '어떤 하나'이거나 '다른 모든 것'을 이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그 의미의 실마리를 찾아볼 수도 있다. 팔월이란 삶의 환경 속에서 '다른 모든 것'은 잊을 수 있다 해도 오직 하나 혹은 몇은 잊을 수 없는 것들을 안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70년대의 상황과 오늘 제주의 모습은 참 많이도 닮았다. 이를 여름이라고 한다면 인디언 쇼니족의 인식에 근거한 명명은 무엇이 될까. 70년대 산업화의 기치로 잃어버린 것은 무엇이고 또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70년대 산업화의 재연에 못지않은 오늘 제주의 이름은 또 어떻게 명명이 될까. 구호가 만연한 사회에는 철학이 없다. 그만큼 인간과 인간의 삶에 대한 근원적 통찰이 없다는 말이다. 요즘처럼 구호가 난무하는 시대를 경험해본 적이 없다. 6,70년대 불조심, 쥐잡기, 간첩 신고와 같은 표어와 포스터를 보는 것 같다고 하면 지나친 것일까.

도정 홍보지의 '자연·문화·사람의 가치를 키우는 제주', '제주는 청정한 자연과 아름다운 사람이 함께하는 곳입니다'를 보면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왜 이리도 거창한가. 이게 가능한 말이기는 한 것일까. 문득 섬뜩하기도 했는데, 고성에서 북녘 땅을 바라보면 산비탈에 봉우리만큼의 글씨를 옮겨놓은 우상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도정의 목표를 반영한 슬로건이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도정이 바뀌면 내거는 구호에 불과할 뿐이다. 4년이고 8년 정도로 위의 구호들이 도민들의 마음에 다가서겠는가.

제주의 팔월이 쇼니족에게 다가가는 자연 파괴의 주범인 백인들, 소시민들을 무시한 70년대의 산업화, 제주도민의 자리를 빼앗아가는 외부 및 외국 자본의 횡행이 아니라, '탈제주화'는 다 잊을 수 있어도 '제주화'의 것들을 지켜나가는 것이면 좋겠다. 테쿰세의 메시지와 쇼니족의 팔월을 보면서 무상한 것들을 지어내지 않고도 주어진 자연에 대한 감사의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좌지수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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