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쯤 걸린 것 같다. 지난 2일 저녁 서귀포시 자구리공원에서 천지 공영 주차빌딩까지 걸어간 시간이 그랬다. 올해로 스물 한 번째인 서귀포칠십리축제의 읍면동 퍼레이드를 보느라 출발지인 천지동주민센터 부근에 차를 세워두고 나선 길이었다.
서귀포시 원도심으로 향할 때마다 어려움을 겪는 게 주차 문제다. 목적지에서 급한 일을 처리하는 것보다 주차할 데를 찾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매번 "이럴 바엔 사무실에 차를 두고 오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때 뿐이다.
제주섬에서 전국적 걷기 열풍이 시작됐지만 도시는 예외다. 숲길이며 해안길은 시간을 쪼개서라도 걷고 싶은데 일상 생활과 밀접한 도시에선 그런 마음이 안든다. 편하게 걸을 수 있는 도시일 때 빛이 나는 정책들이 잇따르지만 거기에 보행자는 보이지 않는다.
'원도심 활성화'란 이름이 붙은 사업이 대표적이다. 문화든, 역사든, 전통이든 신도시가 흉내내지 못하는 방식으로 도시재생이란 옷을 입혀 지역주민들의 오래된 삶터를 지켜간다고 해보자. 동네마다, 골목마다 차이나는 풍경을 만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걷기다. 행정에서 장려하는 '아름다운 간판'도 걸어야 제대로 눈에 띈다. 큰 길을 내고 주차장 딸린 건물부터 짓는 도시개발과 거리가 멀었던 원도심은 차량을 이용하면 불편이 크다. 사람들이 마음놓고 걸어다닐 수 있는 보행도시라야 원도심의 얼굴이 온전히 드러난다.
서귀포시가 얼마전 문화광장을 만들고 동홍천 복원사업 등을 벌여 원도심을 문화도시로 탈바꿈시키겠다고 발표했다. 문화광장 사업에 275억원이 투입되고 이곳을 서귀포매일올레시장과 연결하는 '애니메이션 테마거리' 조성에 20억원이 쓰일 예정이다. 현을생 시장은 "대규모의 물리적인 개발보다는 사람이 살만하고 문화가 흐르는 휴머니즘적인 가치 재생에 방점을 두고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같은 구상이 서귀포를 걷고 싶은 도시, 걸을 수 있는 도시로 이끄는 계기가 될지는 미지수다.
지자체의 교통정책은 여전히 차량 중심이다. 주차난을 해소한다며 원도심안에 공영 주차빌딩을 지어온 서귀포시도 다르지 않다. 차를 타고 나오면 편한 시설은 애써 만들고 있지만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을 늘리려는 노력은 부족해보인다.
지난 주말 자구리공원에서 열렸던 서귀포칠십리축제는 그동안 천지연광장, 칠십리시공원을 행사장으로 삼았다. 이번에 새롭게 장소가 바뀌었지만 공통점이 있다. 축제장이 시내에서 1~2㎞ 안에 있으니 산책하듯 찾아오라는 안내문이 빠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올해도 시내권 방문객들을 겨냥해 축제 안내 자료에 '꼬닥꼬닥 걸어 옵써'라는 제주방언 문구를 달았다.
번잡한 시가지를 비켜간 축제장이 그만한 거리에 있으니 도심에서는 그보다 짧은 구간에서 시청이나 은행, 시장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보행환경이 잘 갖춰지면 걸어서 누릴 수 있는 이점이 더 많은 서귀포를 꿈꿔볼 수 있다. 2030년까지 도내 모든 차량을 친환경 전기차로 대체하겠다는 제주도의 계획보다 훨씬 적은 예산으로 말이다.
서귀포시는 내년말 완료 예정인 1청사 중심의 시청사 재배치를 두고 인구 유출 방지 등 원도심 재생과 맞물린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머물고 싶은 도시, 살고 싶은 도시에 방점을 찍은 거라면 더더욱 보행도시 전략이 동반돼야 한다. 지금이 기회다. <진선희 제2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