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路 떠나다] 화순곶자왈 생태탐방 숲길

[길 路 떠나다] 화순곶자왈 생태탐방 숲길
걷다가 뒤돌아보는 여유에 ‘비경’은 덤
  • 입력 : 2015. 10.16(금) 00:00
  • 표성준 기자 sjpyo@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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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곶자왈은 산책로 정비가 잘 되어 있고 주변 생태계도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화순곶자왈에서 바라본 산방산. 사진=표성준기자

정비된 산책로에 완벽한 생태계 ‘눈길’
일본군 진지터 등 아픈 역사 흔적 목격
제주인의 삶 흔적 담은 잣담 보존 잘돼

곶자왈은 나무와 덩굴, 암석 등이 어우러져 생태적으로 안정된 천연림을 일컫는 제주도 말이다. 그러나 제주사람들에게 곶자왈은 황무지와 같은 곳이었다고 한다. 화산이 폭발하면서 생겨난 현무암 탓에 잡목만 자라고 땅심도 얕아서 농사를 지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곶자왈은 그저 땔감이나 조달하고, 말과 소를 방목하며, 노루나 꿩을 사냥하는 곳이었을 뿐이다.

곶자왈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은 순전히 과학 덕분이다. 사람들은 여러 연구가 선행되어서야 화산이 분출하면서 만들어낸 용암의 요철 지형이 지하수 함양과 보온·보습 효과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덕분에 남방계 식물이 살 수 있는 북방한계선과 북방계식물이 살 수 있는 남방한계선이 공존하는 세계 유일의 독특한 숲을 이룬다는 결과도 얻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곶자왈의 특성이 되레 그 가치를 높여주는 요소였던 것이다.

일본군 진지터 흔적.

학자들은 제주도의 곶자왈지대를 크게 서부지역의 한경-안덕 곶자왈지대와 애월 곶자왈지대, 동부지역의 조천-함덕 곶자왈지대와 구좌~성산 곶자왈지대의 4개 지역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 곶자왈지대는 제주도 전체 면적의 6.1%에 불과하지만 제주도 식물 1990종류 중 약 46%가 자란다는 조사 결과도 발표됐다. 10여년 전의 조사여서 지금쯤은 많은 변화가 있겠지만 오랫동안 곶자왈의 다른 이름이 숨골이었던 것처럼 그 가치는 변할 수 없다.

한경~안덕 곶자왈지대에 포함되는 화순곶자왈은 서귀포시 안덕면 상창리 소재 해발 492m인 병악에서 시작해 화순리 방향으로 총 9㎞에 걸쳐 분포한다. 평균 1.5㎞의 폭으로 길게 뻗어 곶자왈로는 드물게 산방산 근처의 해안지역까지 이어진다. 제주에서 해안과 가깝다는 것은 접근성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말이다. 1132번 지방도로에 인접해 있고 비교적 짧은 시간에 둘러볼 수 있어서 최근에는 관광객들도 즐겨찾고 있다.

잘 정비된 산책로.

화순곶자왈 생태탐방 숲길은 1.6㎞의 직선코스(25~35분 소요)와 2㎞의 기본순환코스(30~40분 소요)가 있다. 입구에서부터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고은의 '그 꽃' 전문)처럼 곶자왈에 어울리는 시가 적힌 여러 푯말을 만날 수 있다. 안덕산방도서관 소속 산방독서회 회원들의 마음 씀씀이가 숲길을 찾는 이들로 하여금 절로 명상에 잠기게 한다.

목마장 흔적을 보여주는 잣담.

이 숲길은 자연곶자왈길과 송이산책로, 삼나무데크산책로 등이 잘 정비돼 있어서 쉽게 걸을 수 있다. 청단풍과 단풍, 때죽나무, 푸조나무, 큰봉의 꼬리, 생달나무, 왕초피 등 곶자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생식물과 함께 개가시나무와 새우난, 더부살이고사리 등 멸종위기 식물도 만날 수 있다. 직박구리 울음소리가 발길을 붙들고 세계적으로 희귀종이라는 긴꼬리딱새와 제주휘파람새도 눈에 띈다. 화순곶자왈 숲길에선 옛 목마장의 흔적인 잘 보존된 잣담도 감상할 수 있다. 연중 푸른 숲을 유지할 수 있어서 소와 말을 키우기에 적합했음을 알려준다. 일제강점기 미군의 제주도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일본군이 구축한 진지터도 남아 있다.

올라갈 때 못 본 꽃을 내려갈 때 보게 되듯 숲길을 걸을 때 문득 뒤를 돌아보면 마주하게 되는 비경이 있다. 화순곶자왈에선 새가 남겨놓았는지, 으름열매 무더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곶자왈은 이렇게 뒤돌아보는 여유를 안겨준다. 여유의 또 다른 이름은 수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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