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표를 썼는가?"
"행복하지 않아서요."
"나라면 후회할 거 같다. 스펙이 아깝지 않았는가?"
"전혀요!"
'홋카이도, 여행, 수다'는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북해도에서 500일 동안 '두근거리는 삶'을 산 30대 여자의 여행 에세이다. 작가는 일상 같은 여행 또는 여행 같은 일상 500일의 킨포크 라이프를 아름답고 감성적인 문장에 맛깔나게 담아내고 있다.
지은이는 교환학생과 국제환경단체 인턴을 거쳐 350대 1의 경쟁을 뚫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금융회사에 취업했다. 하지만 '주말과 저녁이 없는 삶'과 보수적인 직장문화, 그리고 깨뜨릴 수 없는 '유리천장'에 깊은 상실감을 느낀다. 결국 그는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 분명히 알고 가는' 낙화를 떠올리며 입사 3년만에 사직서를 쓴다. 그리고 몇 개월 후 뒤따라 사표를 낸 남편과 함께 여름휴가 때 홀딱 반해버린 홋카이도로 긴 여행을 떠난다.
홋카이도는 '머무는 여행'을 막 시작한 젊은 부부를 홍차처럼 붉은 단풍잎을 흔들며 환영해주었다. 그들은 습자지에 떨어진 잉크처럼 자연스럽게 홋카이도에 스며든다.
'홋카이도, 여행, 수다'엔 삿포로에서 오호츠크해의 유빙까지, 지은이가 살고 여행하고 먹고 즐긴 북해도의 이름난 도시와 최고 여행지, 환상적인 자연, 이름난 음식이 대부분 등장한다. 그 보다 이 책의 더 큰 매력은 '숨 막히는 안정'을 버린 지은이가 '두근거리는 삶'을 가꿔 가는 500일의 여정을 더불어 공유하는 즐거움이다.
"영화 '러브레터'에서 흐르는 음악은 오타루와 무척 잘 어울린다. OST를 들을 때면, 마음 속 어디선가 눈이 내려 내 속에 소복이 쌓인다. 특히 1번 트랙 'His Smile'의 낮게 깔리는 도입부와 11번 곡 'A Winter Story'에서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연주가 절정으로 치닫는 그 부분이 나는 참 좋다. 정말로 누군가의 전생에 들어섰다 나온 기분이 든다." (176페이지)
"오늘도 나는 잘 있다. 잘 살아있는 덕분에, 발끝이 아찔해질 정도로 걷고 자전거 페달을 굴린다. 봄을 맛보고 냄새를 맡고, 계절이 주는 모든 것과 볼을 비벼댄다. 열 개 발끝으로 땅을 꾹 누르며 봄을 감각한다. 새로운 골목을 탐하며 환각에 빠져 버린다. 봄이여, 부디 내내 어여쁘시길." (84페이지)
그렇다면 홋카이도 여행의 결론은 무엇이었을까.
지은이는 여행 500일이 끝난 뒤 자신의 변화를 감지했다. 내면 저 깊은 곳에서 '또 다른 그'가 올라와 가슴을 툭, 치며 말했다. "이제 가자." 그는 좌표를 한국으로 돌리며 새로운 좌표도 정했다. 오래도록, 계속 글 쓰며 '나'로 살기로!
인천공항에 도착한 그는 비행기 창가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 "잘 지냈나요? 나는 잘 지냈어요!"
아름다운 문장으로 갈무리한 지은이의 내면 풍경을 엿보고, 머무는 여행에서 건져올린 희망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재미가 쏠쏠하다. 디스커버리미디어. 1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