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시작하며] 다양성을 인정할 줄 아는 사회

[하루를 시작하며] 다양성을 인정할 줄 아는 사회
  • 입력 : 2015. 11.18(수) 00:00
  • 편집부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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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릴 적 기억에서 학교에서의 체육시간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당시 군사정권은 초등학생들에게도 '질서경진대회'라는 명목으로 제식훈련을 시켰다. 어린 우리들은 "앞으로 가! 뒤로 가! 좌로 가! 우로 가!"라는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 이유도 모른 체 로봇들처럼 움직였다. 어쩌다 실수라도 하면 사정없이 선생님의 욕설이 날아온다. 잔뜩 긴장하고 한 시간을 버텨야 하기에 그 시간은 여느 때보다 힘들고 고단하다. 그래서 체육시간은 추억대신 하기 싫은 고된 훈련으로만 기억된다.

과거 우리는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획일화된 틀에 갇혀 지내야 했다. 얼마 전 영화'국제시장'에서도 보았듯이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해야 하고 나의 경험처럼 한창 뛰어놀 학생들에게 제식훈련을 강요하던 시절 혹은 학생들에게 일률적인 검은 교복을 입히고 남성 장발 혹은 여성들의 미니스커트 길이를 단속하느라 경찰인력이 투입되던 그런 웃지 못 할 일들이 현실이었다. 당시 정권은 국민들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일정한 틀에 가둬놔야 그들의 입맛에 맞게 통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전 세계의 독재국가들을 보라. 그들의 공통점은 철저히 국민을 억압하고 통제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생각을 강요한다. 개인들 각자가 판단하는 듯 하지만 무의식중에 깔린 생각들이 자기 검열을 통해 걸러 나오게 한다. 결국 주도적 생각을 할 수 없는 국민들은 독재자들의 의도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행이도 우리는 민주화과정을 거치며 자유로운 생각과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 혹자는 너무도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져 나온 탓에 혼란스럽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는 아직도 성숙하지 못한 문화 탓이지 다양성이 문제가 되진 않는다. 남의 의견을 경청하고 인정하거나 아닌 부분을 설득해 내는 훈련이 필요하다.

또한 시대가 변하면 가치도 달라진다. 과거 어른들에게 아지노모토로 대표되는 조미료는 고급 향신료였다. 하지만 지금은 조미료가 첨가 된 식품을 기피한다. 불편하게만 여겨지던 온돌방이 웰빙으로 각광받는다. 가치의 절대기준은 없다. 그렇기에 다양하게 생각하고 나와 다른 것에 대해 부정에 앞서 왜 그런가를 생각해야 한다.

전 세계 분쟁의 대부분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기에 발생한다. 인종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삶의 방식이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의 기준으로만 판단하여 재단한 결과 다름은 곧 이단이 되고 잘못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갈등 대부분도 그렇다. 다른 이의 의견은 무시한 채 일방통행을 하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가진 이들에 의한 의도적인 일방통행은 사회 갈등을 부추긴다. 최근의 국정화 교과서 문제는 물론 지역 내 각종 개발 사업의 과정 등이 지속적인 갈등으로 점철되고 있다. 밀어 붙이기보다는 반대의견을 경청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를 낭비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헤어스타일이나 옷차림이 자유스러워졌다고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정신을 가두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애써 얻고자 했던 자유는 다양함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 다양함을 포용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이는 자유의 대가이고 그것이 바로 가치이다. <조미영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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