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시작하며]해동(解凍)의 들녘으로

[하루를 시작하며]해동(解凍)의 들녘으로
  • 입력 : 2016. 02.03(수) 00:00
  • 편집부 기자 sua@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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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형, 아직도 따지 못한 귤농장들이 보입니다.

쭈글쭈글 동해(凍害) 입은 그 귤들을 감싸 안은, 나무들의 충혈된 눈망울도 보입니다. 0형, 애초 적정생산량이라 했었지요. 품질도 좋은 편이었어요. 기대가 컸던 것입니다. 느닷없이, 수확 철에 연일 내리던 장맛비가 불길한 조짐이더니, 그 기대는 초반부터 무너지기 시작했지요. 뜻 모를, 끝도 모를 그 추락에 망연자실한 농가의 한숨은 가슴을 찢어놓았습니다. 애지중지 가꿔온 귤들을 제 손으로 땅바닥에 떨구는 그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벌겋게 널린 그 귤들을 물썩물썩 밟고 다니는 그 가슴이 또 어떠했겠습니까. "이담엔 잘 되겠지…"하는 생각으로, 비틀거리는 걸음을 겨우 지탱하던 그 농심이 또한 어떠하였겠습니까. 죄지은 듯, 고개 숙여 울먹이는 귤나무들의 그 처절한 모습은요.

1년 내내의 정성이나 그 고생은 그만두고라도, 치솟는 농약값 인건비 등 생산비에도 아예 못 미치는 상황이, 그저 안타깝고 참담한 것입니다. 그렇다 해도 0형, 한생의 우여곡절을 다 겪은 우리들입니다. 그 세상살이가 어떠하던가요? 명암이거나 높낮이거나 길흉이거나… 무시로 교차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물레방아 돌듯, 돌고 또 도는 것 아니었습니까? 일마다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것의 부질없음을, 우리는 이미 경험한 터입니다. 그러니, 지레 흥분하고 속단하기에 앞서, 실로 냉철한 판단의 신중한 대처가 무엇보다도 필요한 때입니다. 무시로 풍파인 바다가 스스로의 가슴을 맑히듯이요, 한시도 쉬지 않은 그 바다가 비로소 넉넉함으로 자리하듯이요. 우리가 여까지 와서, 이만 일에 주저앉을 수야 없는 것입니다. 언제 우리가 호강하며 살았습니까. 다만, 땀 흘린 만큼의 보람을 찾고자 하는 것이지요. 이제 한생의 그 연륜으로 우리가, 흔들리는 식구들을 달래야 합니다. 동요하는 이웃들을 다독여야 합니다. 제 탓인 양, 아직도 고개 들지 못 하고 서있는 귤나무들을 북돋아야합니다. 내일을 기약해야 하는 까닭이지요. 0형, 이 시점에 이르러,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따로 있습니까? 어차피 귤나무와 함께하는 오로지 그 외길이기에, 더욱 그러한 것입니다.

0형, 눈마저 폭설이네요. 매스컴은 온통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더니 웬걸, 32년만의 폭설이라네요. 기온도 서귀포가 영하 6.4도… 귤나무가 얼어 죽을 수 있는 온도입니다. 이 와중에 산후조린들 제대로 했겠습니까. 허약해진 그 나무들이 과연 이 추위를 견뎌낼까 걱정이 큰 것입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일이 이렇게 꼬이네요. 고비입니다. 혹독한 시련입니다. 이 고비, 이 시련을 무사히 넘겨야하는데… 차분히, 지혜를 모으고 또 모아야 합니다. 영양제 살포 등 어떡하든, 귤나무들을 살려내야 하는 것입니다.

0형, 계절엔 유예가 없어, 낼 모레가 입춘입니다. 입춘이라 해도 아직 추위의 서슬은 퍼럼니다. 추우면 떠는 게 제일이라 했던가요, 날로 악화되는 상황에 몸과 마음이 떨리더라도, 떨면서라도 0형, 우리는 이제 해동의 들녘으로 가야 합니다. 훌훌 털고, 다시 시작해야만 되는 것이지요.

"아직도 이 세상에, 국회를 믿는 놈이 있어? 게네들은 어느 것이 옳은가가 아니라, 어느 것이 저들에게 이익 되는가에 목매는 종네기들이야. X같은 새끼덜, 허구헌날 쌈박질이나 하고, 넬름넬름 쳐 먹기나 하지, 대체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있느냐 그 말이야, 내말은!" 0형, 어느 날 밤, 목로주점에서 들리던 왁자지껄 그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이 밤에 환청처럼 또 들리네요. <강문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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