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의심 가득한 세계를 파고드는 시선

[책세상] 의심 가득한 세계를 파고드는 시선
편혜영 네번째 장편소설 '홀'
  • 입력 : 2016. 04.15(금) 00:00
  • 이현숙 기자 hslee@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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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의 네번째 장편소설 '홀(The Hole)'이 출간됐다. 40대 부부 이야기가 중심축이다.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을 펼쳐 보인 첫 소설집 '아오이가든'(2005) 이후 작가는 새 작품마다 변화의 지점을 만들어가며 초창기 작품세계를 넘어서는 밀도높은 서사와 문장의 긴밀성을 장점으로한 작품들을 써왔다.

이 책의 이야기는 단편 '식물애호'에서 시작됐다. 느닷없는 교통사고와 아내의 죽음으로 완전히 달라진 40대 대학교수 오기의 삶을 큰 줄기로 삼으면서, 장면 사이사이에 내면 심리의 층을 정말하게 쌓아 올렸다. 또 모호한 관계의 갈등을 치밀하게 엮어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해낸다. 사고가 일어난 직후 벌어지는 일들과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일들이 교차로 그 모습을 드러내면서 한 인간에 대한 적나라한 일면이 서로 단단히 연결된 문장들로 기록되어 있다.

특별한 일 없이 흐르던 일상은 순식간에 엉망이 되기도 한다.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재앙과 고난을 기다렸다는 듯이 작가는 그 시작을 알리는 방아쇠를 당긴다. 오기의 신체와 삶이 완전히 무너져 버린 데에 교통사고가 결정적이고 직접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작가는 사고가 일어나기 전 오기의 삶을 한꺼풀씩 벗겨내며 이미 뚫려 있던 구멍의 실체를 드러낸다.

어찌보면 40대는 성공과 실패가 갈리는 나이다. 오기는 성공했고 아내는 실패했다. 오기는 미래의 불안을 이겨내고 부단히, 때로는 약삭빠르게 행동해 교수 자리를 거머쥐었다. 아내는 어느 하나 이루지 못했다. 느는 것은 조롱과 비아냥뿐이었다. 그런 아내에 대해 오기는 "화가나 작가가 되고 싶은 게 아니었다. 단지 성공해서 이름을 날리고 싶어했다"고 평가절하한다. 그래서일까. 오기가 장모에게 당하는 끔찍한 상황은 속물적으로 살아온 그에 대한 죽은 아내의 보복처럼 읽힌다.

편혜영은 이효석문학상(2009), 동인문학상(2012), 이상문학상(2012), 현대문학상(2015) 등을 받았다. 문학과지성사.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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