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둔덕 위에서 바라본 섭지코지 해변과 마을 전경(위). 마을회관 옥상에 오르면 멀리 일출봉과 함께 마을 중심부가 눈에 들어온다(아래).
더 나은 삶 위해 섭지코지 인근 바닷가로 이동하며 설촌 지질자원 위에 세운 관광위락시설… "마소는 다 어디로" 해안선 따라 섭지코지 한바퀴 도는 레일바이크 사업 구상
섬 제주에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새로운 해가 떠오르는 마을 신양(新陽).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날로 거듭 새로워지기를 염원하는 태양이 뜬다. 나날이 새로워져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에겐 하루하루가 도전의 역사다. 과거의 틀에 가둬지기를 거부하는 진취적인 마을 사람들을 만나려면 신양리에 가면 된다. 마을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지형을 관찰하니 말 두(斗)자처럼 머리 쪽은 막히고 밑은 터졌다고 방두포(房斗浦)라고 했다. 조상들이 불러온 고유지명은 '방뒤'다.
1894년, 동학농민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제주의 동쪽 고성리에서 정씨와 김씨 등 몇 명이 섭지코지가 가까운 바닷가 지역으로 이주해 움막을 짓고 어로생활을 시작했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이동이 설촌의 시작이라고 한다. 마을 원로들이 어린 시절 들었던 설촌의 과정은 제주의 새로운 마을들이 어떤 연유로 파생하는 지 보여주는 가장 구체적인 고증자료이기도 하다. 어로에서 시작하여 농경으로 생업의 범위가 넓혀지는 동력은 독특하고 넓은 해안선을 따라 올라오는 둠북, 감태와 같은 해조류가 많아 농사에 필요한 거름을 풍부하게 얻을 수 있어서였다.
섭지코지에서 바라본 신양해수욕장과 마을풍경.
척박한 토양에 바다가 제공해주는 양질의 비료를 투입하여 소출을 높일 수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어로와 농경을 함께 할 수 있는 신양리 지역으로 대거 사람들이 몰려왔다. 15년이 흐른 1909년 기록에 의하면 50가구 정도가 거주하고 있었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다. 바닷가 둔덕에 올라 100년 전 텅 빈 바닷가 지역에 초가집이 하나씩 둘씩 한해가 다르게 지어져가는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그리고 거기에 살던 사람들을 타임머신에라도 태워서 지금의 섭지코지 일대를 구경시키고 싶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던 사람들이 이 물질만능 시대가 만들어놓은 세상을 바라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 지 뻔하다. 섭지코지에 뛰놀던 마소들은 어디 갔냐고 물을 것이다. 후손들에게 물려줄 지질자원 위에 관광위락시설을 지을 수 있도록 한 정책추진 주체들에게는 뭐라고 할까? 이러한 지명을 생활정보로 사용하던 사람들의 땅과 바닷가였다.
지질학적 관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 신양리 해변 지층.
가시빌레, 감태여, 고래죽은알, 돌캥이술, 볼랫줄동산, 비애기부리, 세성젯술, 앞갈챙이, 어게통, 오근달이마루, 와사물, 장골왓, 곰돌랭이, 진방뒤 등등. 행정과 법으로 정당화된 개발이라 하더라도 지역주민들의 생업공간을 잠식하고 파괴하였다는 현실적인 문제 앞에 섭지코지 관광개발로 이익을 얻는 업체들을 상생 방안에 적극 나서야 한다.
김동환(74) 개발위원장에게 그런 사실이 있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러한 반목과 갈등을 중재하고 원만하게 협력을 유도하기 위한 노력을 나서서 하는 행정가도 정치가도 없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지요. 우리가 무슨 일방적인 요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서로 도움이 되는 방향을 찾고자 하는 것이지." 대기업들이 섭지코지를 관광자원화 해서 얻는 이득이 있다면 사회 환원 차원에서 지역주민들과 공익적 투자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사회적 정당성이 충분하다.
고형준 이장
고형준(57) 이장은 가장 시급한 신양리의 당면 과제를 이렇게 밝혔다. "마을 지번이 고성리로 되어져 있습니다. 이를 행정적으로 분리시키는 일이 가장 급선무입니다. 행정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준다고 하고 있으니 희망을 가지고 고성리와 협의할 것입니다. 여러 가지 혼동을 방지하기 위한 차원에서 미래 지향적인 일이기에 성과는 지역주민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입니다." 행정과 법이 이원적인 구조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국민의 세금으로 봉급을 받는 사람들의 직무유기가 분명하다.
지금도 어촌계가 왕성한 생업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설촌 단계에서 천연적으로 조성된 수많은 포구들을 이용하여 윤택한 생활을 영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만구(68)어촌계장은 "올해부터 시작되는 전통포구 사업에 주민들이 참여하여 소득을 증대 시킬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어민 소득과 무관한 전시행정이 되지 않아야 옳은 사업이 아닙니까?" 라고 했다. 피해의식이 컸다. 누가 봐도 공유수면이 아닌 지역도 지적도가 공유 수면으로 되어져 있기 때문에 어민들이 수익사업 공간으로 쓰려고 해도 막아서는 행정 행위에 너무 오래, 많이 당했기 때문.
초록이 짙어가는 소수산봉은 마을의 주봉으로 평온한 느낌을 준다.
정훈필(39) 청년회장은 "신양해수욕장이 섭지코지 개발 이후 파래 번식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어르신들이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문제를 항상 행정 예산으로 감당하는 것도 염치가 없는 일이고 하니 신양해수욕장을 활용한 해양레포츠사업권을 마을에 줘서 청년회를 중심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수익을 낸다면 사업장에 대한 상시적인 환경관리와 함께 후손들에게도 마을공동체의 역할에 대하여 당당해질 것입니다."라고 했다. 김법수(47) 새마을지도자의 안목은 신양리의 먼 미래에 다가가 있었다. "마을 주민들이 모두가 주주가 되는 '주식회사 신양리'의 모습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마련해야 합니다. 관광지로 각광 받는 환경적 요인과 대기업들이 투자하여 만든 시설에 곁불 쬐기로 자족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합심 단결하여 다음 세대를 위한 기업마인드 만들기 작업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오기에 가까운 어떤 응어리가 느껴졌다. 신양리의 유동인구를 생각하면 누가 봐도 현실적인 극복방안이다.
어촌계와 개발위원회의 공통적인 꿈이 있었다. 섭지코지를 한 바퀴 해안선을 따라서 돌아오는 레일바이크사업을 신양리마을회에서 할 수 있다면 대대손손 복지와 장학 혜택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확신. 걸림돌은 단 하나였다. 현실적으로 맞지 않은 지적도의 공유수면 문제를 행정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새롭게 그어주는 것이다. 제주 마을 중에 관광1번지를 꿈꾸는 신양리 주민들의 도전 정신이 매일 새롭게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