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목 굴채작업도 거의 끝났다.
해마다 겪는 일이지만, 무슨 난리인듯 한판 굿 신명인듯, 그냥 귀눈이 왁왁하는 것이다. 02포크레인을 계속 가동하지만, 오랜 시간 기다리는데 따른 불평 불만이 어찌 없었을까. 나름으론 최선을 다 하노라고 하지만, 미흡한 점들이 어찌 없었을까. 돌아보면 그저 미안한 생각뿐이다.
연일 계속되는 강행군, 저녁에 돌아오면 몸은 파김치가 된다.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품종을 앞서지 못 한다'는 말이 있듯이, 육묘업… FTA시대를 맞아 경쟁국에 밀리지 않는, 우수한 감귤품종을 공급해야한다는 사명감으로, 어쩌면 그 자부심으로 지금까지 버텨왔다. 눈 비가 안 오면,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으니, 12인승 스타렉스 가득 인부들을 싣고, 어떨 땐, 하루에도 몇 번씩 운송하기를 30년 이어온 것이다. 지친 아내는 기어이 "그만하자" 한다. "이제 제발 그만하자"고 말한다. 그래도 아들놈이 토요일 일요일이면 벗어부쳐 일을 챙겨주니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이다. 어쨌거나 묘목은 진력을 다한 내 새끼들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딸들인 것이다. 어디에 시집가든, 부디 잘 살고 자식들 많이 낳아, 풍요로운 가정 이루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같은 묘판의 같은 묘목인데도, 어느 농가는 "840본을 사갔는데, 하나도 안 죽고 잘 컴수다"하며 고마워하는가하면, 어떤 이는 "묘목덜 다 죽어베수다. 거 미신 묘목이 그런 묘목이 다 이수과!" 생떼를 부리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정성이다. "여차여차 전정하고, 뿌리에 아토닉 등을 탄 물을 푹 적셔서 심으세요. 심은 후엔 꼭, 잘 밟아줘야 합니다"고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그냥 헹하니 인부에게 맡겨버리는 경우가 있다. 뿌리가 마르는지, 전정을 하는지, 제대로 밟기는 하는지 확인도 안하고 돌아다니다 보면, 결국 죽는 것이다. 생명을 다름에 있어,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결론은 첫째도 정성, 둘째도 정성이다. 그게 어디 묘목에 한하랴, 세상살이가 다 그런 것 아닌가.
또 하나 문제는, 조급증이다. "묘목을 심고, 잘 밟은 다음 바로, 계분이나 돈분 등 퇴비를 땅이 안 보이게 두텁게 깔아줘야 합니다. 그렇게 2년을 잘 가꿔, 사람 키만큼 키운 다음, 3년째부터 열리세요. 작은 묘목에 열매를 열리면, 수확량도 얼마 안 되고 나무만 시달립니다. 특히 극조생인 경우, 해거리 없이 해마다 잘 달리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나무가 쇠약해 집니다. 잘 키우지 못했을 땐, 1~2년 더 기다려 반드시 사람 키만큼 키운 후에 열리기 시작해야만 됩니다." 입이 닳도록 당부 하지만, 대개는 욕심을 낸다. 작은 나무에 열리는 대로 열려버린다. 그래놓고 수세(樹勢)타령만 한다. 품종타령만 하는 것이다. 어느 일도 그렇지만, 특히 귤농사에 있어서 그 '조급'은 금물이다.
0형, 무시로 석파시선암(石播詩禪庵)에 들리곤 합니다.
그 양안(兩岸), 아득한 암벽 위의 고목들을 마주하곤 합니다. 나무도 팔자가 있는 것인지, 이 넓고 넓은 들녘에서 어쩌다 하필 암벽에 점지 된 것인지, 어쩌면 0형, 우리는 과연 어느 손에 심겨진 어느 쯤의 나무인지… 문득 생각도 해봅니다. 바늘귀만한 그 암벽의 틈새마다를 비집고 튼, 맨살 그 뿌리들의 안간힘을 보노라면, 한사코 멍엣줄을 끄는 어질머리 그 허공 이랑을 보노라면, 0형, 처절한 그 순명(順命)을 보고 또 보노라면,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것입니다. 극한의 여건 속에서도, 늘 평온을 잃지 않는 고목들, 넉넉히 그늘 드리우며 온갖 새들을 포근히 깃들이는 그 고목들… 0형, 훗날 우리도, 고목이 될 수 있을까요? <강문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