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는 제주관광 개발 역사에서 전환점을 이룬 시기였다. 박정희 정권은 제주와 다른 지역을 오가는 정기여객선 취항, 야간통행금지 완전 해제, 5·16도로 개통 등으로 제주관광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보여줬다. 1973년에 제주도를 국제관광지로 만드는 청사진으로 제시한 '제주도관광종합개발계획'은 60년대의 그같은 정책이 뒷받침된 결과다.
이 무렵 제주건축은 관광개발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1962년 김태식이 설계를 맡은 도내 첫 민영 호텔인 제주관광호텔(지금의 호텔하니크라운)이 착공했다. 1963년엔 김한섭이 설계한 동문시장, 1964년 김중업의 옛 제주대 본관 등 당시 한국 건축계의 이름난 작가들이 참여한 프로젝트가 잇따랐다. 현대건축의 경연장과 같은 이즈음 제주건축 양상처럼 반세기 전인 60년대에도 건축의 새로운 사조와 기술이 제주땅에 소개됐다.
제주시 이도1동에 자리한 제주시민회관도 60년대 산물이다. 제주관광호텔을 설계했던 김태식의 작품으로 오래도록 제주도민들의 문화, 체육시설로 사랑을 받았다. '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에 따르면 제주시민회관은 도내 문화공간이 전무하던 시절 부지 3096㎡에 지상 3층, 연건축 면적 1만2500여㎡ 규모로 건립됐다. 1964년 개관 이래 교양강좌, 세미나, 공연, 학생예술제 장소는 물론 탁구, 태권도, 배드민턴을 할 수 있는 체육시설로 쓰였다. 1988년 제주도문예회관 등 문화인프라가 하나둘 갖춰지면서 제주시민회관 이용객이 크게 줄었지만 그 존재감과 상징성은 여전해보인다.
지난 2월 문화재청은 제주시민회관을 문화재 등록 추진 대상에 올렸다. 근대 이래로 건립된 체육시설이 격동기를 거치며 제대로 된 가치평가 없이 허물어지고 있는 때에 현존 체육시설 중에서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문화재적 가치가 큰 7건 중 하나로 제주시민회관이 포함됐다. 그 소식을 접하면서 비록 제주시민회관의 성격을 '근현대 체육시설'로 한정하긴 했지만 제주도민들과 함께 나이를 먹어온 건물이 간직한 사연을 널리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일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얼마전 제주시가 시민회관을 문화재로 등록하는 일에 반대하는 입장을 문화재청에 제출하기로 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관련부서와 지역주민에게 물었더니 제주시민회관이 문화재로 지정될 경우 주변지역 재산권 침해와 지역상권 침체 등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유형 자원에 대한 문화재 지정에 나설 경우 재산권 침해를 들며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일이 있었다. 하지만 제주시민회관은 다르다. 실생활에 사용되는 근대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2001년 도입된 등록문화재로 추진됐기 때문이다. 등록문화재는 지정문화재와 달리 문화재 내부와 주변지역의 개발 등과 관련해 규제사항이 없고 문화재 보존과 활용을 통해 관광자원으로 가꿀 수 있다. 제주시 문화재 행정의 행보가 아쉬운 이유다. 더욱이 제주시민회관을 재건축해 복합상가나 행복주택으로 조성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니 우려가 크다.
몇년 새 제주의 역사, 문화, 행정의 중심지였던 제주시 원도심의 흔적이 밴 건축물들이 허망하게 철거된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정부 지원을 받는 도시재생 사업에 선정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는 지자체인데도 말이다. 이 도시의 소중한 '기억'이 또 그렇게 사라지려나. <진선희 편집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