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시작하며]제주 식구들은 편안하십니까

[하루를 시작하며]제주 식구들은 편안하십니까
  • 입력 : 2016. 08.03(수) 0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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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제주어른들의 인사말은 '밥 먹어시냐'다. 물론 먹을 것이 모자랐던 시절의 안부를 묻는 말이었을 테지만 먹을 것이 너무 많아 뭘 먹을 지 고민하는 이 시절에도 그 말처럼 따뜻한 말은 없다. 가족을 지칭하는 '식구(食口)'도 어려운 시절의 강퍅한 말 같으나 가만 들여다보면 공동체적 관계성을 내포한 울타리 언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밥 먹어시냐'가 어느덧 '편안해시냐'는 말로 대체되는 동안 심심풀이 콩알 하나가 하늘과 땅을 거쳐 내 몸에 들어와 충만한 삶의 에너지로 변환하여 콩 줄처럼 쭉쭉 뻗어 나가 사회와 유기적 관계 맺고 더 큰 식구를 형성하는 생명살림의 경로를 알게 된다. 이처럼 하늘과 땅과 사람에 속한 생물들의 상호 관계를 서로 살리며 지속가능한 형태로 잡아주는 농사를 유기농업이라 한다.

제주에 유기농가는 고작해야 전체농가의 3%수준이다. 그래서인지 농약이 살포된 전원배경에 축산분뇨 냄새가 따라다니고, 빛 좋은 개살구마냥 오염된 식품이 버젓이 동네 상점 진열대 위에 올라앉아 호객한다. 어른들은 어머니가 해주시던 밥을 편안히 잘 먹기 위해 이리저리 기웃거리고 젊은 어머니들은 아이들의 안전한 밥상을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먹거리를 찾아 헤매야 한다. 땅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우영에 텃밭 가꾸기보다 집 한 채라도 더 지어 세를 놓아 골프 치러 다니는 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제주의 요즘 '좀 산다'는 집 풍경이다. 첨단기계사회에서 더 이상 인간의 노동으로 빚어내는 금빛 알을 낳기에 부적절하다고 판정된 비정규직 '민'들은 언제 축출될지 몰라 퇴화된 날개짓 시늉으로나 자유를 논하는 양계장의 병든 닭처럼 서로 멀거니 쳐다보는 눈빛이 불안하다. 걱정과 근심으로 숨이 턱턱 막힌다. 하늘, 땅, 사람, 사회라는 유기적 질서가 깨져버린 결과다.

재화(최대이익)를 바탕으로 하는 관행농사와 관계(생산자와 소비자간의 상호협력공동체)를 바탕으로 하는 유기농사의 차이는 상극과 상생이라는 생명살림의 질적 차이를 재는 척도로 귀결된다. 제주의 97% 농가가 쉽게 돈이 되는 관행농사를 선호하는 까닭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라는 농업적 결함을 이겨낼 수 있는 기술력과 가치인식이 결여된 까닭이다. 그들 중 대다수는 '유기농사란 낮은 수확량, 비싼 농자재, 유통의 폐쇄성, 까다롭고 쉽지 않은 일'이라 회피하려 들지만 유기농 관련업계에 종사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돌려짓기와 섞어짓기, 퇴비를 활용한 저렴한 친환경농자재로 충분한 양분공급은 물론 병충해 방제로 수확량 비례 증가'와 '소비자와 호흡을 함께하는 맞춤형 생산과 안정된 유통구조'라는 인식이 오래도록 지속가능한 후손들에게까지 물려줄 수 있는 '기름진 옥토유산'이라는 데 그 가치를 한데 모은다. 일부 선진 유럽의 경우, 자본주의형 농업경제의 취약점을 조건분리·경관보존직불제 도입은 당연하고 농업인들에게 교사자격증을 주어 전인교육과 환경관련 교육의 장으로 더 넓게 활용한다. 그쪽 농민들은 소득이 떨어진다고 농촌을 떠나는 일은 거의 없다. 재화의 가치보다 자연의 순환 관계를 통해 실현되는 '인간과 사회'라는 관계 가치를 우선하기 때문이다.

소규모 조합원들이 모여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친환경 영농 법인들의 힘만으로는 '선진농업문화의 가치를 키우는 제주'를 만들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호흡하는 관계중심의 유기농' 장려를 위한 '관'의 호흡-보다 우수한 친환경농자재개발, 민간인환경교육, 타지역간의 원활한 유통, 인적자원개발과 기술개발로 안전한 '시설·관리·유지통합시스템 구축'을 위한 공적사회자본 투입의 노력-또한 절실히 요구된다. 이로 인해 '헬제주'로 낙인찍힌 제주도가 '자연, 문화, 사람의 가치'를 키우는 '낙원제주'로 거듭 나는데 있어 꼭 필요한 충분조건이 될 것이다. <고춘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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