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칼럼]해녀를 부탁해!

[한라칼럼]해녀를 부탁해!
  • 입력 : 2016. 09.06(화) 00:00
  • 편집부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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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1월1일 깊은 눈에 덮인 한라산 정상에 마침내 도달했던 한 일본인이 있다. 문화인류학자 이즈미 세이치다. 부친이 경성제국대학 교수였던 까닭에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던 이즈미 세이치는 당시 경성제대 산악반의 일원으로 겨울 한라산을 등반했다. 그러나 악천후로 친구를 한라산에 묻고 거의 평생에 걸쳐 제주도에 매달렸다. 해방 후엔 단체 관광단으로 위장해 제주도에 스며들었다. 그렇게 근 30년에 걸쳐 제주도를 공부한 보고서가 '제주도'라는 책이다.

'오후 4시쯤 되면 바다가 따뜻해진다. 또 누군가가 "물질하레 가자" 하면 다시 줄줄이 바다로 향한다. 석양빛이 해상에 피처럼 흐르고 멀리 화산력 깔린 산간지대가 보랏빛으로 빛날 때까지 그녀들은 물질하고 해질녘의 용암 언덕길을 걸어 집으로 서둘러간다.'

그는 마치 사진을 찍듯 제주도를 옮겼다. 생활에 사용하는 도구들이나 가옥의 모습은 그림을 그려 이해를 돕고 직업, 교육, 종교, 심지어 가정의 분위기까지 제주도에 밟지 않은 땅이 있을까 싶을 만큼 조사하고 통계를 냈다. 한국 사람도 아니고 제주도 사람은 더더욱 아닌 일본인의 제주 보고서를 읽으며 나는 1930년대 일제 강점기부터 1965년까지 30년간의 제주도가 눈앞에 그대로 펼쳐지는 것만 같았다. 그의 책을 새삼 다시 펼친 것은 일본이 자국 해녀인 '아마'의 유네스코 등재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진 즈음이었다. 1960년대, 미 공군이 저체온증을 극복하기 위해 제주 해녀를 연구했을 만큼 제주 해녀의 한랭적응력은 뛰어나다. '아마'는 온난한 계절에만 활동한다. 이즈미 세이치 역시 이에 관한 보고를 거르지 않았다.

'이 섬의 잠녀는 잠수하는 깊이에 있어서나 날씨나 계절에 대한 강함에 있어서나 일본 해녀들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한다. 그래서 이 전에 한국 연안에서 작업하던 이세(일본 미에 현 지방의 옛 이름) 해녀가 맞서지 못해 물러났고 육지는 말할 것도 없고 쓰시마를 비롯 일본 각지, 나아가서는 만주에까지 진출했다.'

해산물을 채취하는 1분에서 2분 사이, '잠녀'로 살아가는 일생동안 숨을 멎은 그 시간을 모두 다 합치면 얼마만큼 될까? 뛰어난 '기능보유자'라는 말로는 모자란다. 그것은 '모성애의 기적'이다. 척박하고 절박한 심정을 담은 해녀 노래와 무사귀환을 비는 잠녀굿, 바다의 신을 모시는 해신당, 불턱에서 피어오르던 여성 중심의 독특한 공동체 문화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제주도만의 해양 문화이다. 그리고 여전히, 이즈미 세이치가 보았던 그때와 다름없이,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는 제주도의 정체성이다. 오는 11월, 에티오피아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무형유산 위원회에서 제주해녀문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의 최종 결정이 난다. 제주해녀박물관의 강권용 학예사는 최근 한 기사에서 제주해녀문화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의 주요 심사기준에 완벽히 부합한다고 했다. 더불어 '아마'는 후보신청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심사에서 제외된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제 마음을 놓아도 될까?

지난해 열렸던 밀라노 엑스포에서 일본은 방문객들에게 젓가락 사용법을 교육했다. 일본 음식 문화관에서 젓가락 사용법을 배운 서양인들은 딱히 젓가락 문화의 원조를 캐묻지 않고 당연히 일본 것이라고 기억하게 되었다. 밀라노의 한 대학 교수는 나에게 '그것이 바로 그들의 방식'이라고 귀띔해 주었다. 숫자는 점점 줄어들고 날이 갈수록 고령화 되고 있는 제주 해녀의 미래는 더 깊은 바다 밑을 헤매는 듯 힘겹다. 문화주권을 지키는 일은 유네스코의 문화유산등재만이 아닐 것이다. 스스로 기억하고, 널리 알리고, 두고두고 보존할 '우리만의 방식'을 찾는 일이 절실하다.

<허수경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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