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산책로를 참 좋아한다. 탁 트인 바다는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갈증을 해소하기에 충분하다. 덕분에 걸어서 챙기는 건강에 더해 마음의 치유도 덤으로 얻어가는 셈이다. 한낮의 태양에 점령당했던 바다 풍경은 저녁 어스름에 더욱 빛을 발한다. 발그레한 노을과 검은 물결에 내비치는 불빛들 덕분이다. 이즈음이면 멀리 수평선을 에워싼 어선들에서 내뿜는 집어등이 장관이다.
하지만 최근 제주항 인근의 풍경은 달라졌다. 확대된 제주 외항의 방파제와 국제여객터미널 등이 바다를 대신해 자리하기 때문이다. 그곳에 정박한 커다란 크루즈는 화려한 불빛을 밝히고 있다. 마치 특급호텔 하나가 바다에 떠 있는 듯 보인다. 멀리 수평선의 집어등은 비교도 할 수 없는 규모의 화려함이다. 덕분에 하룻밤 사이에 대형 호텔 하나가 생겼다 사라졌다 하는 마술과도 같은 풍경을 목격하게 된다.
제주항 외항 2단계 개발 사업이 완공될 즈음 관계자들은 "제주항 개발이 완공될 즈음이면 국내외 관광객 유치에 큰 도움을 주고, 주민과 관광객의 휴식공간으로서 역할을 해낼 것이다"라는 기대감을 내비쳤었다. 불과 1년 전인 지난해만 하더라도 여객터미널 완공에 따른 기대감으로 "크루즈 관광객의 입출항이 한결 수월해졌다"며 앞으로 수많은 관광객 유치를 위한 만반의 준비가 다 되었다는 희망찬 포부를 내비치곤 했다.
하지만 얼마 전 진행된 제주국제크루즈 세미나에서는 몇 가지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번거로운 수속절차와 짧은 체류시간, 그리고 항만 인프라의 부족 등 제반 사항이 원활치 않다는 것이다. 이에 CIQ(세관, 출입국관리, 검역)를 간소화하고 항만 인프라 구축을 위해 탑동 매립을 통한 제주 신항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위의 인터뷰에서 보듯 건설하고 완공되면 다 해결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국제여객선 터미널과 약 3400억원이 투여된 제주항 외항 확장공사 그리고 수많은 상처를 남긴 강정 해군기지 내 민군복합항 완공은 모두 최근의 일들이다. 그런데 벌써 기항지 부족과 시스템의 부실이 지적된다는 것은 무얼 의미할까?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전문가들의 정책 과실인가, 행정의 무능인가?
더욱이 도민들이 체감하는 크루즈관광의 효과는 아직도 미지수다. 오히려 면세점으로 몰려드는 크루즈 관광객으로 인한 교통 몸살과 그들이 버리고 간 어마어마한 쓰레기더미만이 생채기처럼 남아있다. 크루즈 관광객이 100만명을 넘는다고 홍보를 하고 있지만, 이들 중 많은 수가 1인당 약 5만원의 인두세를 주고 데려오는 관광객들이다. 여행사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동선이 짜일 수밖에 없다. 대형면세점 주변으로 관광버스가 몰려드는 이유이다. 또한 그동안 제주시에서는 크루즈 선에서 발생한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 지난 3년간 약 180억원의 예산을 투여하였다고 한다. 도민의 혈세가 그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처리비용으로 쓰인 것이다.
마치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여겨지던 크루즈 관광이었다. 하지만 시행되자마자 벌써 몸살을 앓고 있다. 제주 섬이라는 공간의 한계는 생각지 않고 숫자의 마법에 빠져 허우적거린 결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대형 크루즈 기항을 위한 신항 건설을 운운하고 도민의 안전과 건강을 담보로 한 규제 완화를 언급하고 있다. 이는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묻고 싶다. 아무리 많은 수의 관광객이 오더라도 도민의 삶에 혜택이 없다면 이는 잘못된 정책이다. 더는 보여주기 식의 성과로 포장하지 말라. 모든 정책의 핵심에는 도민의 행복이 우선되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조미영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