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칼럼]“압도적인 힘을 당장 이길 순 없지만”

[한라칼럼]“압도적인 힘을 당장 이길 순 없지만”
  • 입력 : 2016. 09.13(화) 00:00
  • 편집부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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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하순, 오키나와에 다녀왔다. 2013년 1월 이후 네 번째 방문이다. 앞의 두 번은 학교 일로 간 것이지만, 뒤의 두 번(지난 12월과 이번)은 원광대 김재용 교수를 비롯한 오키나와문학연구회원들과 함께 자비로 다녀왔다.

오키나와문학연구회는 한국문학 전공자 셋, 일본문학 전공자 셋이 꾸린 작은 모임이다. 5월에는 오키나와 문학 관련 논문들을 모아 '오키나와문학의 힘'이라는 공저를 펴냈는데, 거기에 '4·3소설과 오키나와전쟁소설의 대비적 고찰'이란 내 글도 실렸다. 제목은 거창하게 보이지만, 실은 김석희의 4·3소설과 메도루마 슌의 오키나와전쟁소설을 분석해 공통점과 차이점을 논한 글이다. 말하자면 아직 공부의 시작 단계일 뿐인 셈이다.

오키나와는 나에게 상당한 자극과 깨달음을 준다. 제주의 모습을 확대해서 분명하게 보여준다. 제주의 미래를 미리 내다보게도 한다. 제주를 더 넓은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해 주면서, 제주에 있을 때보다 더 자유로운 발상으로 이끌어준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1년 정도 오키나와에 머물면서 공부하겠다는 계획도 세워놓았다.

이번 오키나와 방문에서는 세 명의 작가를 만났다. 첫날은 마타요시 에이키, 둘째 날은 메도루마 슌, 셋째 날은 사키야마 다미였다. 오시로 다쓰히로와 함께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소설가들이다. 90대 고령인 오시로는 몸이 안 좋다고 하여 뵙지 못했고, 마타요시와 사키야마는 구면이었다. 마타요시와는 제주에서의 만남을 포함해 벌써 네 번째 만남이었는데, 이번엔 그의 고향 우라소에(浦添)에서 그의 작품 배경이 되는 곳들을 함께 답사하는 기회를 가졌다. 사키야마와는 지난 12월에 이은 두 번째 만남으로, '월경(越境)광장'이라는 잡지를 간행하는 의도라든가 언어(방언)에 대한 관점 등에 대해 듣는 시간을 가졌다.

메도루마는 만나기 어려운 작가다. 제주에 초청해 보려고도 했지만, 그는 요즘 오키나와를 잠시도 떠나지 않는다. 오키나와에서도 좀처럼 만나기가 어렵다. 바로 기지반대운동의 최전선에서 투쟁하는 활동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고(名護)에서 메도루마를 만났다. 앙다문 입술에 매서운 눈빛을 지닌 강인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그는 우리를 만나기 위해 잠시 현장에서 빠져나온 터였다. 매일 새벽 5시부터 투쟁을 준비하며, 대부분 차에서 잠을 해결한다고 했다. 요즘은 해노코(野古) 기지 건설 현장(소송으로 공사가 중단된 상태였음)이 아닌, 밀림 지역인 다카에(高江)의 미군 북부 훈련장에서 투쟁한다고 했다. 오스프리(변종수송기)의 이착륙 등을 위해 밀림 속 미군 기지를 대폭 확장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그것이 숲의 생태를 해친다는 이유 등을 내세워 반대운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노트북으로 동영상 자료를 보여주면서 열정적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압도적인 힘을 가진 세력을 당장은 이길 수 없으니까 인내력을 가지고 방해 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는 메도루마의 전언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수년 전 현기영 소설가와의 대담에서 4·3 때의 항쟁과 관련해 들었던 말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이길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서 항복하고 굴복해야 하나? 이길 수 없는 싸움도 싸우는 게 인간이란 거지. 거기에 정의가 있으니까."

메도루마는 다시 말했다. "인간이 불의에 맞서는 감정은 점차 분노, 증오, 살의의 단계로 이행하게 마련이다. 그러니 더 불행해지기 전에 분노의 단계에서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 그의 뜨거운 열정과 확고한 신념에 나는 무척 초라해짐을 느꼈다. 그날 밤, 술을 많이 마셨는데도 별로 취하지 않았다.

<김동윤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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