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시작하며]진실과 거짓의 위태로운 줄다리기

[하루를 시작하며]진실과 거짓의 위태로운 줄다리기
  • 입력 : 2016. 10.19(수) 0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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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다는 건 불안감과 두려움이 동반된다. 건네는 것도, 잘 전해졌는지도, 그로 인해 어떠한 결과가 도래할 지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모든 과정 사이사이에는 의심과 불온한 상상력이 불쑥불쑥 고개를 들어 훼방을 놓기 마련이다. 진실과 진심. 세상은 너무도 편해져서 관계를 형성하고 소통하는 방식은 쉽고 다양해졌으나 그로 인한 부작용처럼 여기저기 틈틈이 난무하고 있는 거짓과 가식들 또한 넘쳐나고 있다. 어쩌면 소통의 기회는 늘었으나 진심을 들여다보기에는 더욱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SNS에 올려진 행복한 한때로 그 사람의 일상 모두를 짐작할 수 없고 사실을 전하는 뉴스마저 이제는 더 이상 온전한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 세상. 숲의 나무도 때로 솎아주고 가지치기를 해주어야 하늘이 보이고 햇살이 땅까지 스며들어 건강한 숲이 되는데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나무만 울창하여 하늘도 보이지 않고 햇살도 느껴지지 않아 눅눅하고 스산한 숲 같다.

외적 인격을 뜻하는 '페르소나'는 사회가 규명한 규율과 규범, 그리고 그 속에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만든 또 다른 인격을 의미한다. 현대인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다양한 페르소나를 형성하며 살아간다. 그것은 약육강식의 사회 속에서 노련하게 삶을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로 필요충분조건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올바른 페르소나는 스스로의 본성을 알고 본인의 자유의지로 행동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삶이 위선과 거짓으로 물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불편한 진실을 감추기 위해 혹은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거짓으로 꾸며진 페르소나는 페르소나의 하위 개념으로 분류된 가식과 부정적인 나르시시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해가 져도 수많은 조명으로 반짝여 어둠이 파고들 틈이 없는 도시처럼 현대사회는 온갖 화려한 볼거리들이 넘쳐난다. 그 화려한 틈을 타서 때때로 진실은 거짓이 되기도 하고 거짓이 진실이 되기도 한다. 거짓 정보들이 난무하여 수많은 사회적 문제점들은 올바른 판단을 거치지 못한 채 소모적인 논쟁이 되어 세상이라는 망망대해에 표류한 채 서서히 잊히기도 한다. 그러한 세상의 혼란 속에서 우리 개개인들 역시 진실과 거짓의 위태로운 줄다리기를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닐까. 보다 맑은 정신으로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을 굳건하게 다잡는 것, 참 힘든 일이지만 삭막하고 스산한 세상 속에서 따뜻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그것만이 최선이 아닐까.

물론 진실은 때때로 다른 길로 방향을 틀어 왜곡되고 오해를 낳기도 한다.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그것은 '진실 없는 사람에게 진실을 쏟아부은 대가로 받는 벌' 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진실한 인연과 그렇지 않은 연연을 가려내기란 여간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은 아무리 먼 길을 돌고 돌더라도 결국엔 드러난다는 믿음. 관계를 맺음에 있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진심을 전해야 한다는 확신. 감정 없이 말초신경만을 자극하는 '말'들은 자연스럽게 흘려보내고 두 눈으로 본 것과 가슴으로 느낀 것만으로 판단하는 지혜. 그러한 노력이 온전한 자신 속에서 이성의 의지로 만들어진 또 다른 인격, 올바른 페르소나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옷깃으로 제법 찬바람이 스며드는 가을이 깊었다. 무심하게 누른 '좋아요'보다 마주 보며 따뜻한 눈빛을 주고받을 수 있는 좋은 인연들이 그리운, 스산한 가을이다. <김윤미 서귀포시 귀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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