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휩쓸고 지난 뒤 진행된 12차 에코투어는 이전과는 다른 빛깔의 여정이 그려지는 즐거움이 컸다. 사진은 따라비오름. 강희만기자
비슷한 듯 다른 느낌으로 빗속 이색 코스 탐방'오름의 여왕' 따라비엔 봉우리마다 다른 전경흰가시광대버섯 등 색색의 식물 시선 사로잡아
깊이 여무는 가을, 자연의 숨겨진 이면을 탐구하고픈 탐방객들은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모여들었다. 태풍에 이은 잦은 비로 내심 걱정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새로운 느낌의 투어를 할 수 있다는 설렘은 에코투어만이 지닐 수 있는 색다른 매력일 것이다.
지난 8일 '2016 제주섬 글로벌 에코투어'가 열 두 번째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날 에코투어는 유채꽃프라자에서 출발해 족은사슴이오름과 큰사슴이오름을 탐방하고, 갑마장길을 따라 다시 새끼오름과 따라비오름, 가시천, 행기머체로 이어지는 약 12㎞ 거리의 여정이었다.
아침 일찍 모인 탐방객들은 삼삼오오 모여 가장 먼저 장비부터 가다듬었다. 비 소식이 있는 만큼 모두의 준비는 단단했다. 출발점인 유채꽃프라자에 도착하자, 태풍이 지나간 흔적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가볍게 몸을 풀고 억새의 환송을 받으며 물기를 담뿍 먹은 탐방로를 걷기 시작했다.
소록산이라고도 불리는 족은사슴이오름은 탁 트인 전망이 없어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 아니다. 말굽형 모양의 이 오름을 남봉에서 시작해 능선을 타고 북봉으로 건너오는 색다른 코스로 만났다. 정비된 탐방로가 없어 탐방객들은 풀을 헤치며 길을 잇고 만드느라 이따금씩 발걸음을 세워야 했지만 그만큼 사람의 손길이 덜 탄 탓인지 청미래덩굴 열매, 가막살나무 등 먹음직스러운 열매로 볼거리가 가득해 보는 눈은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미끄러운 탐방로를 넘어지지 않게 서로 도와가며, 나무에 표시된 표식들을 따라 한 시간 남짓 걸었을까. 족은사슴이오름은 정상도 분명치 않은 스치는 듯 지나가는 느낌이었지만 탐방객들의 마음을 잡기에 충분했다.
따라비오름
우려하던 비는 큰사슴이오름(대록산)을 오르는 동안 내리기 시작했다. 비는 탐방객들의 발길을 더디게 해 주었지만 하나로 응집시켰고, 대지의 향을 더욱 피어오르게 했다. 짙은 녹음을 맡으며 걷는 빗속 탐방길은 후각과 청각이라는 또 다른 감각을 열어주었다. 태풍이 지나가고 난 뒤라 바닥에 떨어진 솔잎들이 잔디처럼 살포시 깔려 마치 푸른 카펫을 걷는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한 탐방객은 "비가 많이 와 만약 혼자나 가족이 왔으면 이미 예전에 돌아갔을 것이다. 지금 모두가 함께라서 이런 탐방을 할 수 있는 것 같다"면서 "태풍과 비로 덮인 오름을 찾는 것도 매우 운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능선을 따라 분화구 안까지 빙 돌아본 뒤 정상을 올라 전경을 탐했다. 목축 산업의 원류라 할 수 있는 탁 트인 초지에서 뿜어내는 시원한 바람은 풍력발전소와 함께 큰사슴이오름이 주는 또 다른 선물이었다.
잣성길
피할 그늘막도 없이 비와 함께 먹는 점심은 모두가 함께여서 그런지 훈훈했다. 비가 더욱 거세지면서 코스를 변경해 새끼오름이 아니라 갑마장길을 따라 걸으며 바로 따라비오름으로 향했는데, 갈수록 세차지는 빗소리에 탐방객들의 아쉬움이 더해졌다.
길안내를 하던 이권성 제주트레킹연구소장은 "같은 오름이라도 보는 방향이나 올라가는 코스에 따라 같은 듯 다른 느낌을 준다"면서 "따라비오름은 모지오름과 새끼오름 사이에서 보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고 강조했다.
따라비오름은 6개의 봉우리와 3개의 분화구가 능선을 타고 이어져 있어 여느 오름처럼 단순하지 않고 각 봉우리마다 다른 전경을 볼 수 있어서 오름의 여왕이라 불린다. 부푼 기대감을 갖고 한 식경 정도 올랐을까. 따라비오름 정상에서 탐방객들을 맞이한 건 유려하게 이어지는 아름다운 능선과 그 능선을 타고 곱게 불어오는 바람이었다. 깊은 분화구 안까지 침투한 바람은 억새를 이리저리 흔들면서 오름 전체를 뒤흔들고 있었다.
12차 에코투어에서 만난 색색의 식물. 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미역취, 흰가시광대버섯, 산부추, 청미래덩굴 열매.
행기머체
따라비오름에서 심신을 달랜 탐방객들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오름을 내려왔다. 흰가시광대버섯 등 중간중간 꽃 대신 핀 유채색의 버섯들이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마지막 행선지는 행기머체로 융기한 머체(돌 무더기)위에 행기물(녹그릇에 담긴 물)이 있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을 돌아보는 것을 끝으로 빗속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큰사슴이오름.
올해 남은 에코투어에 모두 참여해 개근상을 타고 싶다고 하는 임성현(64·제주시 도남동)씨는 "주말마다 등산이나 오름 약속이 있지만 이 에코투어는 항상 우선 순위"라면서 "코스를 우회하거나 일반적인 코스와 다른 코스를 많이 가기 때문에 색다른 느낌이 나고, 특히 오늘처럼 비가 오거나 궂은 날씨에도 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라고 소감을 말했다. 이어 "보통은 아는 지인들과 산행을 하지만 이렇게 낯선 사람들과 함께 걷는 것도 큰 장점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라일보사가 오는 12월까지 매달 2회 주말마다 진행하고 있는 '2016 제주섬 글로벌 에코투어'는 앞으로 3회를 남겨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