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시작하며]정낭은 없다

[하루를시작하며]정낭은 없다
  • 입력 : 2016. 11.02(수) 00:00
  • 편집부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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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에 구멍 세 개 뚫린 정주먹 두 개를 양쪽에 떨어지게 세워 놓는다. 그 구멍 세 개에 굵은 나뭇가지를 걸친다. 정낭이다. 이 독특한 대문 형식은 제주만의 것이다. 가축들을 방목하여 기르던 시절, 정낭은 이들의 침입을 막고 이웃에게 집주인의 위치를 알려 주었다. 끼워져 있는 나뭇가지 수에 따라 집 주인이 어디쯤에 있는지 알려주었으니 아날로그 식 GPS다. 안에서 열어줄 때까지 닫힌 문만 바라보게 되는 것과는 다른, 나그네와 주인 간의 격(格)과 따뜻함이 살아있다. 닫혀 있어도 열려있어 오가며 봐도 모른 척, 안 봐도 다 알 수 있겠다. 안에서도 올레를 내다 볼 수 있어 이웃과 함께 있다. 집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대문 대신 걸쳐놓아 주인 대신 집을 지키던 정낭. 지금 정낭은 어디에 있는가.

제주는 환절기다. 심하고 오래된 몸살을 끙끙 앓는다. 안타깝게도, 제주는 예전의 '삼무(三無)의 섬'이 아니다. 삼다도(三多島)에는 돌·바람·외인(外人)이 많다. 무비자 입국자가 매년 늘고 있고, 대한민국에서 인구수 대비 범죄율이 가장 높다. 길, 길을 닦아 올레를 열었건만 호젓한 산책이 두렵다. 마을 한복판 성당에서의 묵상과 기도조차도 위험한 일이 되었다. 관광지이니 당연히 여행객을 받아야 하고, 국가적 정책인 귀농귀촌도 환영할 일이니, 외지인과 토박이의 갈등을 어쩔 수 없다고 손 놓고 있어야 하는가. 비자 면제까지 해주며 관광객을 유치한 만큼 무엇을 얻는가. 외국인 범죄의 대부분인 중국인 범죄는 다수 교통위반 등의 경범죄였지만, 상상 초월로 나날이 포악해지고 있다. 제주는 거의 모든 외국인이 최대 한 달간 자유롭게 체류할 수 있는 관광지이다. 이런 빈틈은 무비자 입국 후, 쉽게 달아나는 많은 불법 체류자들을 만든다. 기껏 쇼핑을 해도 면세점 이용이 많고, 더러 한국 대기업들이 얻는 약간의 득이 있을 뿐, 수익은 다시 중국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온 제주가 왁자지껄한데, 막상 큰 이익 없이 터만 내주는 꼴이다. 최근 우리 동네 곳곳에도 뚝딱하면 높이 서는 새 빌딩의 주인은 모조리 중국인이란다. 풍요 속 빈곤이다. 해변이건 산중턱이건 가리지 않고, 거대 자본에 팔려나간다. '내 놀던 옛 동산'인데 개발사업 부지나 사유지가 되어 아무나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 되어가고 있다. 빛 좋은 개살구다. 대자본 대거 유입된 난개발로 훼손되는 환경과 기존 상권 피해와 갈등, 부동산 가격 상승 등의 문제들은 또 어떻게 할 것인지.

물론 좋은 이웃은 있다. 귀농귀촌으로 이 섬에 와 제주를 잘 알고 바로 배우며, 제주사람들과 더불어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는 이들이다.

내게는 향나무에 놋쇠 구슬 세 개 박힌 휴대전화 액세서리가 있다. 정낭 꽂힌 정주먹의 측면을 본뜬 형인데, 언젠가 어린 조카가 보더니 '신호등이네?' 한다. 그러고 보니 세 개의 불을 밝힌 신호등도 닮았다. 최근 구슬 하나가 빠져서 두 개만 남았다. 정낭이라면, 주인은 이웃 마을쯤 마실 나갔다. 신호등이라면, 초록 불 빠진 점멸등처럼 보인다. 위험을 알리는 빨강과 노랑 불만 깜빡인다. 지나가도 좋으나 위험은 스스로 판단하고 조심해야 한다. 이제 정낭은 없다. 쓰임새를 알아 본 나그네에게 얼씨구나, 싼값에 넘겨버렸다. 더러는 오래 방치하여 눈비 맞아 썩어 문드러졌다. 게다가 주인의 부재를 알려서 좋을까, 그보다도 집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면 자유로울까. 혼재된 생각으로 어지러운 채, 올레 끝에 정주먹만 서 있다. 초록 불 깨진 점멸등처럼. 최소한의 방어로 걸쳐 둘 정낭도 없이.

<김문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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