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칼럼]국민보다 그들만을 위한 '소통 에너지'

[한라칼럼]국민보다 그들만을 위한 '소통 에너지'
  • 입력 : 2016. 12.13(화) 0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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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총량제'라는 말이 곳곳에서 들린다. '환경총량제'가 대표적이다. 환경 보전을 위해 쓰레기 등의 총량을 규제하여 환경을 보호하자는 발상이다. 방송에서도 '광고총량제'를 적용하여 광고 시간의 총량을 제한하고 있다. 우주의 존재 이치를 다루는 '총량 보존의 법칙'과 맞닿아 있다. 모든 사물에는 질량과 에너지의 총량이 정해져 있고, 그 총량을 벗어나 존재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이를 인간의 삶에 적용하기도 한다. 인간이 평생 경험할 수 있는 '행복, 행운, 고통의 총량'이 정해졌다는 말이 쉬이 쓰이고 있다. 사회학 용어로 아직 정립되어 있지는 않지만 '지랄 총량의 법칙'이라는 용어도 쓰인다. 사람이 일생동안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이야기이다. 총량의 법칙을 소통에 적용해 보면, 누구나가 소통할 수 있는 총량은 정해져 있다. 대통령이라 하여 예외일 수는 없다. 그만큼 대통령의 소통은 꼭 필요한 곳에 정성스럽고 긴요하게 쓰여져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법리적 판단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정치적으로 박 대통령은 탄핵을 받은 거나 진배없다. 박 대통령의 비극이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은 '불통'에서 시작되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 말대로라면, 대통령은 소통능력이 없거나 소통할 의지가 전혀 없는 인물에 해당한다. 하지만, 정작 대통령 스스로도 이렇게 판단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여러 차례의 담화문에서는 자신의 잘못보다 오히려 대통령의 진정성을 몰라주는 국민을 문제 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에게 국민은 뒷전이었다. 국민의 대의대표인 국회의원들과도 데면데면했다. 관료제의 근간을 뒤흔들 만큼 각 부처 책임자들과도 제때에 제대로 소통하지 않았다. 지구상 어느 시대 혹은 어느 국가에서도 시도된 적이 없을 법한 '서면보고'로 국가를 운영하고 통치하여 왔다. 정작 대통령이 소통해야 할 대상들과는 불통의 벽으로 가로막았다.

대통령의 소통 에너지는 최순실 씨를 중심으로 한 '끼리끼리'의 이너 서클에 한없이 너그럽게 쓰여졌다. 이 이너서클 안에서의 소통은 매우 섬세했고 자상했다. 고충 또한 매우 신속하고 친절하게 해결됐다. 일개 부서의 국장이나 과장이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정도로, 그들이 아직도 그 자리에 남아있음을 헤아릴 정도로 세심했다. 박 대통령의 소통 에너지가 국민을 위한 국정에 투입되지 않고 그들만의 이너서클에 '몰빵' 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어느 누구도 공식적으로 결의하지는 않았지만, 박 대통령과 함께 탄핵에 준하는 심판을 받은 대상이 있다. KBS, MBC, SBS로 대표되는 지상파 방송사들이다. 유독 이들 방송국 출신들은 대통령의 필요와 배려에 의해 청와대로, 정부부처로, 국회로 입성했다.

그래서였을까. 이 방송국들은 국민보다는 청와대와의 소통을 중시했다. 시청자주권 대신 대통령의 권력 확대를 택한 것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더 이상 이들 지상파 3사 방송을 일부러라도 찾아보지 않는다. 심지어 KBS는 공영방송으로서의 위상마저 위협받고 있다. 이들의 빈자리는 손석희 씨의 JTBC가 대신하고 있다. TV조선과 채널A도 최근 시청률 조사에서 MBC와 SBS를 앞질렀다.

국민을 살뜰히 돌보지 않은 박 대통령은 나쁜 대통령이다. 국민 대신 대통령과 청와대를 선택한 방송도 나쁜 언론이다. 박 대통령과 지상파 방송 모두 국민과의 소통에 실패했다. 국민이 부여해 준 '소통 에너지'를 그들만을 위해 온전히 쏟아부었다. 탄핵의 불길을 이들이 피할 수 없는 이유다. <최낙진 제주대학교 언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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