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우의 한라칼럼] 블러드 오렌지를 아십니까?

[김윤우의 한라칼럼] 블러드 오렌지를 아십니까?
  • 입력 : 2026. 03.24(화) 01:00
  • 김윤우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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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만다린 등 수입과일이 요동치는 가운데도 한라봉과 천혜향, 레드향으로 이어지는 제주 만감류의 흐름은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제주 농업의 중요한 축으로 굳건하게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 익숙한 흐름 속에서, 한때 조용히 등장했다가 다시 사라져 가고 있는 이름 하나가 있다. 바로 '블러드 오렌지'다.

블러드 오렌지는 붉은빛을 띠는 과육이 특징인 감귤류로, 일반 감귤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향과 깊은 풍미를 지니고 있다. 제주에서도 약 10여 년 전 농업기술센터를 중심으로 시범 재배가 이뤄지며 일부 농가에 보급된 바 있다. 당시 재배 농가는 10여 곳, 생산량은 약 45t 수준에 이르렀고, 맛과 향에 대한 평가는 결코 다른 귤에 뒤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현재는 재배 농가가 손에 꼽힐 정도로 줄어든 상황이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상품성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의 부재였다. 도매시장 중심의 유통 구조 속에서 블러드 오렌지는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소비자에게는 낯설었고, 판매 채널은 이를 설명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결국 많은 농가들이 레드향이나 천혜향 등 안정적인 품목으로 전환하게 됐고, 블러드 오렌지는 그렇게 조용히 자취를 감춰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시장은 그때와는 다르다. 오늘날 소비자는 단순히 당도 높은 과일만을 찾지 않는다. 색감과 향,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함께 소비한다. 온라인 직거래와 프리미엄 과일 시장의 확산은 소량 생산 품목에도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블러드 오렌지는 직거래 시장에서 ㎏당 7000원에서 9000원 수준의 가격을 형성하며 일정한 소비층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제는 시선을 바꿀 필요가 있다. 블러드 오렌지를 기존 만감류의 하나로만 바라보는 접근으로는 더 이상 답을 찾기 어렵다. 이 과일은 단순한 품종이 아니라,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담아낼 수 있는 감귤류다. 기존 만감류가 당도 중심의 경쟁에 머물러 있다면, 블러드 오렌지는 색과 향, 그리고 활용성을 기반으로 한 '경험 중심 소비'에 더 가까운 위치에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활용 가능성이다. 블러드 오렌지는 와인이나 위스키와의 조합, 칵테일, 디저트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블러드 오렌지를 활용한 와인과 음료가 이미 하나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생과 판매를 넘어선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결국 문제는 재배가 아니라 기획이다. 어떻게 보여주고, 어떻게 소비하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던 것이다. 블러드 오렌지는 대량 소비를 위한 품종이 아니다. 오히려 소량 생산을 기반으로 한 프리미엄 시장, 그리고 가공과 콘텐츠를 결합한 새로운 유통 구조 속에서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제는 묻고 싶다. 우리는 이 가능성을 다시 외면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시장으로 키워낼 것인가. <김윤우 무릉외갓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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