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수의 스피시즈 한라산엔시스 탐사(3)]제1부 아득한 기억, 알타이-③ 두 종의 미나리아재비

[김찬수의 스피시즈 한라산엔시스 탐사(3)]제1부 아득한 기억, 알타이-③ 두 종의 미나리아재비
미나리아재비種… 한반도 건너뛰고 한라산 고지에서 발견

  • 입력 : 2017. 01.16(월) 0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작은 풀꽃 통해 한라산 식생사 파악
빙하기 확장됐다 남아있는 종 추정


여기까지 오는 길은 험로의 연속이었다. 그 중에서도 마지막 마을인 부갓솜에서 이곳까지의 길은 정말 험했다. 우선 우리는 부갓솜까지 오는 동안에 이미 더위에 녹초가 되어 있었다. 손바닥 만 한 그늘이라도 찾아서 간단하게나마 점심식사를 한다는 것이 부갓솜까지 오게 되었을 뿐이다.

이전 마지막 야영지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출발한 것이 8시였다. 이동시간은 예상보다 지체되어 부갓솜에는 오후 1시가 넘어서 도착했다. 이곳에 하나밖에 없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도 엥헤는 목적지로 가는 길을 수소문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그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절약하려는 내 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지주민들에게 거듭 길을 물어 보면서 가능한 한 빠른 길을 택했다. 어느 정도 경사가 급했지만 초원을 한 20분쯤 달릴 때였을까 급한 경사를 내려가면서 깊고 좁은 협곡으로 들어서는 게 아닌가. 이때부터 탐사대는 완전히 불안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이거 괜찮겠습니까?” 이런 걱정스런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테무르의 게르가 있는 알락 하이르한산 해발 2600m 지점.

이때 줌베레박사 나지막한 목소리로 한마디 한다. “김박사님, 말 타본 적 있습니까?” 정상을 가려면 말을 빌려 타고 가야한다는 것이다. 순간 언젠가 문명옥박사가 한 말이 떠올랐다. 그는 한동안 몽골탐사에 동행했었다. 물론 앞으로 그때의 탐사에 대해서도 다룰 예정이다. “말은 타지 맙서, 혹시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합니까 이 오지에서.” 맞는 말이다. 이렇다 저렇다 대답도 못하고 한참을 생각했다. 결국 말을 타본 적이 없다고 대답은 했지만 이 먼 곳까지 왔는데 말을 탈 수 없어서 목적지에 가지 못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것이다.

현지 주민 테무르의 게르 내부 모습.

협곡의 양사면에서는 돌멩이들이 떨어지고, 고산의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물은 군데군데 길을 막고 있었다. 자동차는 비틀거리고, 계곡에 빠져 오도가도 못 하고 도움을 청하는 차들도 보였다. 그렇게 달리기를 2시간 30분, 더 이상 자동차가 갈 수 있는 길이 없었다. 해발 2600m, 게르가 보였다. 오늘은 이 게르에서 신세를 져야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게르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완전히 고산식물대에 들어섰음을 알게 되었다. 한라산 정상에서 봤음직한 꽃들도 보였다. 미나리아재비과의 식물들이 특히 눈에 들어왔다.

한라산의 구름미나리아재비.

몽골에 분포하는 미나리아재비과 식물은 20속 93종이다. 그 중 미나리아재비 무리에 속하는 종은 16종이다. 우리나라에는 미나리아재비과 식물이 20속 104종이 분포하고 있다. 그 중 미나리아재비 무리는 13종이다. 제주도에는 15속 42종이 분포한다.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표본실에는 제주도에서 채집한 표본으로 11종이 있다. 그 중 한라산 고지대에 자라는 구름미나리아재비(Ranunculus borealis)는 알락 하이르한산에 자라는 알타이미나리아재비(Ranunculus altaicus, 국명 신칭)와 형태적으로 매우 흡사하였다. 이 종들은 어느 진화단계에서 갈라져 분리되었을 것이다. 두 종 모두 다년생 식물에 속하고, 직립한다. 꽃받침조각에 털이 많다. 그러나 뿌리 부분에서 나온 잎은 알타이미나리아재비가 손바닥모양이고 잎몸의 밑 부분이 숟가락 모양인데 비해 구름미나리아재비는 단풍잎모양이고 잎몸의 밑 부분은 심장모양이라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꽃잎이 알타이미나리아재비는 황색으로 6~10매인데 비하여 구름미나리아재비는 황색이면서 가운데 빗살무늬가 있고 5매라는 점에서 구분된다.

알타이의 알타이미나리아재비.

구름미나리아재비는 동유럽, 중국(천산), 카자흐스탄, 시베리아에 분포한다. 특이하게도 동유럽에서 시베리아에 이르는 지대에 분포하는데 한반도를 건너뛰어 한라산 고지에 분포한다. 그러므로 이 종도 빙하기에 제주도까지 영역을 확장했다가 지금까지 남아 있는 종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작은 풀꽃에서도 수 만년의 한라산 식생사가 간직돼 있음을 보게 된다.

위를 올려다보니 정상이 바로 앞에 보이는 듯했다. 바로 그 때였다. 야무지게 생긴 자동차가 올라와 서는 것이 아닌가. 러시아제 UAZ 모델이었다. 4륜구동이면서 4인승이다. 운전자는 바로 이 게르의 주인이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는데, 그의 첫 마디가 귀를 번쩍 뜨게 했다. 이름이 테무르라는 것이 아닌가. <글·사진=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김찬수, 김진, 송관필>





테무르, 중앙아시아의 金氏


알타이산맥 6C 약 200년간

철공의 후손 ‘돌궐’ 근거지


테무르(Temur)는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옛 투르크어로 쇠(鐵)를 의미한다. 우즈베크어로는 테미르(Temir), 터키어로는 데미르(Demir), 페르시아어로는 티무르(Timur)라고 하는데 같은 뜻을 가지며, 오늘날 터키에서 남성이름으로 흔히 사용한다. 몽골어에서도 테무르는 쇠, 무쇠, 쇳물의 뜻이다.

고산식물이 만개한 알락 하이르한산에서 탐사단이 활동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

이 곳 알타이산맥은 돌궐의 근거지였다. 돌궐은 6세기 중엽부터 약 200년간(545~745) 몽골고원과 알타이 지역에서 유목민으로 살았다. 돌궐의 종족기원전설은 다양하게 전하는데 정수일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돌궐은 원래 흉노의 별종으로서 성은 아사나(阿史那)다. 본래 한 부족을 이루고 있었으나 인접국에 패하여 전멸하였다. 열 살짜리 사내아이 하나가 가까스로 살아남아서 승냥이의 부양을 받으며 자라서는 승냥이와 교접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 사실을 알아차린 인접국에서는 이 사내아이와 승냥이를 살해하려고 하였다. 승냥이는 도망쳐서 고창(高昌)북부의 한 산중의 동굴에서 살았다. 그 승냥이로부터 10명의 아들이 출생하여 자라서 성을 갖게 되었는데, 그 중 한 성이 바로 아사나다. 자손이 늘어나자 동굴에서 나와 금산의 남부에 살면서 유연(柔然)의 철공(鐵工)이 됐다.

또는 주서(周書) 권50의 기록을 인용하여 설명한 부분도 있다. 돌궐은 흉노의 일파로 그 성이 아사나이다. 돌궐은 독립된 부락을 이루고 살았다. 인접 국가의 공격을 받아 전 부족이 몰살당하였는데 열 살 난 남자아이만 살아남았다. 병사가 이 아이를 차마 죽이지 못하고 다리를 잘라 늪에 버렸다. 이 남자아이를 이리가 먹여 길렀다. 그 소년이 장성하여 이리와 합하여 이리가 잉태하게 되었다. 이 후손들이 돌궐족이 되었다는 것이다.

테무르는 나라이름으로도 있었고, 현재도 널리 사용하는 성이다. 중앙아시아에서는 우리나라의 김씨라고 보면 된다. 아무튼 오늘 만난 테무르는 그 말의 뜻이 쇠이고, 이곳이 철공의 후손들이 세운 흉노의 일파 돌궐의 땅이었다는 점, 알타이가 금(金)의 뜻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여기서 만난 테무르가 보여준 친절한 환대는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8499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