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수의 스피시즈 한라산엔시스 탐사(15)]제1부 아득한 기억, 알타이-⑮ 북부지방까지 분포하는 종

[김찬수의 스피시즈 한라산엔시스 탐사(15)]제1부 아득한 기억, 알타이-⑮ 북부지방까지 분포하는 종
느릅·비술나무 등 분단분포종 연구로 種의 기원 밝힐 수 있어
  • 입력 : 2017. 05.22(월) 0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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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송악산 정상의 참느릅나무(Ulmus parvifolia).

'아니, 저렇게 큰 나무가 있다니?' 모래언덕을 빠져나가려고 어느 둔덕을 넘는 순간 큰 나무들이 보였다. 한 7m는 족히 될 것 같다. 잎도 무성한데다가 열매도 온전히 달려 있었다. 그간 몽골뿐만 아니라 중국 동북지방과 시베리아에서 봤던 비술나무였다. 느릅나무의 일종이다.

‘이렇게 큰 나무가 모래밭에 자라다니…’ 건조에 견디는 능력이 뛰어난 나무임에 분명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북부지방에 주로 분포하고 남한에는 많지 않기 때문에 볼 기회가 거의 없다. 몽골에서는 극단적인 사막지방을 제외하고 전국에 자란다. 자생지는 바위산이나 돌산의 사면, 계곡의 바닥과 사면, 샘가, 강의 모래나 돌로 된 사면과 햇빛이 강하게 비치는 침엽수림 가장자리에 자란다.

몽골·한반도 전역서 자라는 느릅나무종
제주도엔 혈연종인 참느릅나무만 발견


몽골에는 이 종 외에도 같은 느릅나무 종류로 왕느릅나무, 느릅나무 등도 자란다. 절묘하게도 우리나라에 이 3종이 모두 있다. 다만 제주도엔 이 3종 중 어느 하나도 없다. 대신에 혈연적으로 가까운 참느릅나무가 있다.

대부분의 느릅나무 종류들이 키가 크다. 그런데 제주도에 자라는 참느릅나무는 4m를 넘는 나무를 보기 어렵다. 2m 이내의 덤불 같은 모습으로 자란다. 물론 제주 이외의 지역에서는 드물게 10m 이상 자라기도 한다.

이곳에서 보는 이 비술나무는 한반도를 포함해 동시베리아, 극동, 우수리, 그리고 일본에도 분포하고 있다. 또한 투르크메니스탄을 포함한 중앙아시아에 분포하고 있다. '한국의 속 식물지'엔 이 종의 분포지를 국내로는 '북한', 국외로는 '온대 북동아시아'로만 기재하고 있어 분포범위를 파악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국내 분포지는 '전남 백양산, 지리산 이북', 국외로는 '중국, 몽골, 아무르, 우수리, 다후리아, 아시아'라는 자료도 있다. 좀 더 자세해 보이지만 한편 아시아라는 지나치게 포괄적인 지리범위를 제시하여 역시 크게 신뢰할 바는 되지 못하고 있다.

몽골 모래언덕 엘슨 타사르해의 비술나무(Ulmus pumila)

제주도에 자라는 참느릅나무 역시 '한국의 속 식물지'에는 지리적인 분포를 설명하면서 국내는 '중부 및 남부', 국외로는 '북동아시아'라고만 돼 있어서 분포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어떤 자료에는 국내의 '경기도 이남', 국외의 '일본, 타이완, 중국'이라고 좀 더 자세히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보면 국내에서는 식물의 분포에 대한 정보를 중요성이 떨어지는 분야로 인식해 관심이 없거나 현지탐사나 문헌 확보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털두메자운(Oxytropis racemosa)

이 모래언덕에는 이런 나무들만 있는 건 아니다. 물론 모래땅이라는 특성이 물을 머금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뿌리를 깊게 내릴 수 있는 대형식물들이 유리해 보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런 종들은 물을 뺏기는 면적도 같이 늘어나기 때문에 어느 편이 유리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여기서도 꽤 많은 풀 종류들이 보인다. 환경적응력이 뛰어난 사초과 식물들을 포함해 벼과, 백합과의 식물들도 보인다.

그 중에서도 화려하게 꽃이 피어 있는 식물에 눈길이 간다. 털두메자운(옥시트로피스 라체모사)이다. 이 종은 한반도에는 북부지방에만 분포하는데 정작 북한의 자료에는 이 학명이 기재되어 있지 않다. 같은 종을 아마도 '옥시트로피스 스트로빌라체아'로 쓰고 있는 듯 한데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다. 1913년 나카이 타케노신이라는 일본학자는 이 종을 한국특산으로 보아 '옥시트로피스 코리아나'라는 학명으로 발표한 바 있으나 역시 통합됐다.

물싸리풀(Potentilla bifurca)

물싸리풀도 보인다. 바람에 날려 온 모래를 뒤집어 써 마치 모가지만 밖으로 나온 형상이다. 몽골에서는 거의 전역에 분포한다. 우리나라에선 백두산에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을 뿐 그 이남으로는 기록된 바가 없다.

다만 북한의 자료에 따르면 백두산, 무산, 개마고원의 산지에 자란다고 한다. 중국과 러시아에도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말 이름은 남한에서는 물싸리풀, 북한에서는 풀물싸리, 또는 풀매화라고 한다.

오늘 몽골의 모래언덕에서 만난 비술나무, 털두메자운, 물싸리풀은 이름도 정겨운 우리말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 있으되 지금은 볼 수 없는 꽃들인 것이다. 빙하기엔 이 종들은 한라산까지 확장했다가 온난화로 퇴각했을 가능성이 높은 종들이다.< 글·사진=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김찬수, 김진, 송관필 >



흥미로운 송악산 참느릅나무


비술나무의 분포지역은 독특한 면이 있다. 크게 중앙아시아와 동아시아의 두 곳으로 나뉘어 있는데 이 두 지역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이것은 카라가나에서 봤던 것처럼 분단분포종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독일의 식물학자 쾨네가 서시베리아와 투르키스탄에서 채취한 씨앗으로 키운 나무들을 1910년 독일의 학술지에 신종으로 발표한 바 있다.

이 나무들은 비술나무와 매우 유사했으나 어린가지와 잎의 특징들은 물론 가지가 갈라지는 모양에서도 차이가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잎의 크기가 작았다. 그래서 잎이 작은 중앙아시아산 비술나무와 동아시아산의 비술나무가 서로 다른 종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지금은 과학자들 대부분이 이 두 집단은 비술나무 한 종으로 보고 있다.

어쨌거나 비술나무는 중앙아시아와 동아시아로 분포지역 크게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것은 이미 암매, 조선골담초, 큰골담초에서 봤던 것처럼 분단분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과 서의 분포집단 모두 같은 비술나무라면 분단분포종이다. 그런데 만약 중앙아시아산은 다른 종이라면 분단분포에 따른 지리적 자매종인 것이다.

분단분포 통해 식물사·진화 연구
비술·참느릅나무… 지역적 자매종
제주식물 기원 밝혀줄 중요한 단서

식물의 분포란 이처럼 어느 한 지역의 식물상을 파악하거나 식생사나 진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정보가 된다.

제주도 송악산 정상에는 여러 그루의 참느릅나무가 자라고 있다. 느릅나무가 봄에 꽃이 피는데 비해 이 참느릅나무는 가을에 꽃이 핀다. 그런데 이 식물에 대해 그냥 막연히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넘어가고 있는 실정이지만 실제는 모르는 게 참 많다.

'한국 속 식물지'는 북동아시아에 분포한다고 했지만 실제 이 종은 우리나라 중부이남, 일본열도, 타이완, 중국, 베트남, 인도에 분포한다. 유라시아 관점에서 보면 동, 동남, 남아시아에 분포하는 것이다.

비술나무가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에 분포하는데 비해서 이 종은 그보다 훨씬 남쪽에 분포하면서 서로 지역이 겹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두 종은 지역적 자매종이다.

또한 제주도에 참느릅나무가 분포한다는 건 남방에서 기원한 식물들도 분산에 의해 분포한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종은 제주도에서도 한라산 해발 400m 이하에 분포한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느릅나무와 참느릅나무의 분포는 제주도의 종들이 어디서 왔는가, 더 넓은 시각에서 바라보면 한반도의 종의 기원을 밝히는데도 중요한 단서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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