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무급 가사노동으로 지탱했던 뉴딜시대

[책세상]무급 가사노동으로 지탱했던 뉴딜시대
뉴딜정책 이면 짚은 코스타의 '집안의 노동자'
  • 입력 : 2017. 09.15(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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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즈벨트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1933년 미국의 실업자 수는 1500만명에 달했다. 미 전역에서 실업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시위를 벌이던 때였다.

대공황 이후 미국사회에서 국가가 공공 인프라를 조성해 새로운 일자리와 소득을 만들어냄으로써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뉴딜이 제시된다. 1933년 5월엔 정부가 실업자를 직접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를 처음으로 확립한 연방긴급구제국이 신설돼 국가원조기관을 세우고 5억 달러를 배정했다. 11월에는 토목사업국이 만들어져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

이탈리아 출신의 페미니스트 활동가인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타가 쓴 '집안의 노동자'는 이 시기를 다루고 있다. 19세기말 20세기 초 미국의 진보시대를 시작으로 1929년 대공황 발발, 1930~40년대 뉴딜 정책이 시행된 시대에 걸쳐 실업, 가족붕괴, 빈곤 등의 문제를 노동계급 흑인과 여성을 중심으로 촘촘히 살폈다.

이 책에 따르면 대공황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으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현실에서 여성에게 새로운 책임이 주어진다. 붕괴된 가족을 재건하려는 정부의 기획에 가사노동자와 집안일의 전담자로서 여성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 정부는 당시 17만명의 여성을 '가사서비스 시범사업' 강사로 고용해 식사준비, 아이양육, 빨래, 다림질 등을 가르쳤다. 생산 주기가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실업이 만연했는데 이러한 위험 앞에서도 노동력을 계속해서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일은 주부인 여성의 몫이었다. 뉴딜 시대의 사회 구조는 자본주의로 통합된 가족과 여성의 가사노동으로 유지된 걸 알 수 있다.

여성이 하는 이같은 무급 재생산 노동은 자본주의 성장 계획에서 핵심적인 부분이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장 인정받지 못하는 일이다. 이제 더 이상 가족 안에서만 재생산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집안일이 다양한 가사 서비스로 재편되었지만 재생산 관련 노동은 여전히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으로 무시와 천대를 받는다. 가사노동을 하는 여성들이 그저 '밥하는 아줌마'로 불리고 있는 현실 아닌가. 저자가 들여다봤던 시공간과 다르지만 한국사회의 오늘날 모습이 겹쳐 읽힌다. '뉴딜이 기획한 가족과 여성'이란 부제가 달렸다. 김현지·이영주 옮김. 갈무리. 1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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