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人터뷰]울릉도 마지막 출향 해녀 홍복신씨

[한라人터뷰]울릉도 마지막 출향 해녀 홍복신씨
울릉도 바다서 힘겹게 이어온 숨비소리
  • 입력 : 2017. 09.28(목) 00:00
  • 고대로 기자 bigroad@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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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복신씨가 울릉도 바다를 삶의 터전 삼아 물질을 해온 40여년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홍씨는 생업으로 남편의 도움을 받으며 물질하는 마지막 남은 제주 출향 해녀다. 강경민기자

열다섯살부터 여수·완도 오가며 물질
언니 대신 물질하러 온 울릉도에 정착
해녀의 삶 숙명으로 여기며 산 40여년
울릉도 바다환경 갈수록 악화되지만
지역 해녀들에 대한 지원·관심 미미

"울릉도에서 아저씨(선주)가 언니를 찾아 제주에 왔는데 언니가 물질을 가지 못하게 되자 내가 대신 울릉도로 오게 됐다. 17살에 와서 남편를 만나 결혼하고 지금까지 이곳에 살고 있다."

남편 손두환(68)씨가 운항하는 배를 타고 물질하는 제주시 한림읍 수원리 출신 울릉도 해녀 홍복신(62)씨의 이야기다. 당시 외항선을 타던 형부가 선원 생활을 포기하고 농사를 짓게 되면서 몇년간 울릉도로 출향 물질을 했던 언니가 울릉도로 오지 못하게 된 것이다. "언니는 제주시 한림읍 귀덕리에서 농사를 짓고 물질을 하면서 잘 살고 있다"고 홍씨가 말했다.

가난으로 먹고 살기 위해 15살부터 여수와 완도를 오가며 출향 물질을 했던 그녀가 언니를 데리러 온 선주를 따라서 울릉도에 오지 않았더라면 그녀의 인생은 아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울릉도에서 해녀의 삶을 숙명처럼 여기고 살아왔다. 강한 조류와 시간과 날씨에 따라 변화무쌍한 바다로 인해 1년에 100일 정도만 물질을 할 수 있는 울릉도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40여년 동안 물질을 하면서 딸 셋을 키워냈다. 대구에 큰 집도 마련했다. 물질을 하지 않은 겨울철에는 이곳을 떠나 딸이 살고 있는 대구에서 지내고 매년 '설'을 쇠고 이곳 울릉도로 돌아와 물질을 시작한다. 그녀는 "겨울에는 눈이 엄청나게 많이 온다. 포클레인이 자동차를 끌고 다닌다"고 울릉도의 겨울을 설명했다.

그녀는 남편이 운항하는 배를 타고 저동어촌계로부터 임대한 '죽도'에서 해삼과 소라, 전복, 문어, 홍합 등을 잡으면서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울릉도 바다 환경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어 물질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다 어촌계에서 스쿠버 다이버들의 불법 수산물 채취를 금지하고 있으나 해경의 단속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홍씨는 "해산물을 불법으로 잡는 스쿠버 다이버들을 신고하지만 빠르게 도망가서 잘 잡히지 않는다. 스쿠버 다이버들을 단속하면 물건이 없어 육지에서 사람들이 와도 식당에서 먹을 것이 없다"고 했다.

또 "울릉군에서 스쿠버 다이버들을 동원해서 1년에 한번 소라와 전복, 고동 등을 가리지 않고 잡아먹는 바다의 무법자 불가사리를 잡아내고 있고 어촌계에서 군의 지원을 받아 바다에 종패를 뿌리고 있다"면서도 "10여년 전 백화현상이 나타난 후부터는 해조류와 해산물이 크게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이들 해녀들에 대한 행정의 지원과 관심도 제주도에 비해 미미하다. 울릉군에서 2년에 한번 잠수복 한벌을 자부담을 포함해서 지원해 주고 병원 진료비 일부를 지원하고 있지만 실제 혜택은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울릉도에서 2명의 제주 출향해녀들은 스쿠버 숍 보트를 이용해 해산물을 잡고 있다. 다른 해녀들은 미역철에만 일당을 맡고 미역채취 작업을 하고 있다. 이에 홍씨는 생업으로 남편의 도움을 받으며 물질을 하는 마지막 남은 제주 출향해녀이다. 그녀의 숨비소리가 사라지면 울릉도 제주 출향해녀의 흔적은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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