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달 비추는 거울같은 바다를 갖고 싶어요"

[책세상]"달 비추는 거울같은 바다를 갖고 싶어요"
낯선 환경에 발내딛는 용기 담은 '나만의 바다'
  • 입력 : 2017. 09.29(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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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면 바위에 앉아 파도를 구경했어. 빛이 반짝이고 일렁이다가 희미하게 아른 거렸어. 바다의 끝은 어디일까? 상상만 해도 어지러워. 드넓은 바다를 보고 있으면 내 마음속 모든 생각도 걱정도 하나둘 줄어들다가 사라져 버려."

아이는 어느새 바다에 반해 버렸다. 처음엔 바다로 가기 싫었다. 가족이 바닷가를 휴가지로 정했을 때 아이의 표정은 시무룩했다. 친구들이 있는 도시의 편안한 집을 떠난다는 게 불만이었다.

그래서 아이는 바다가 있는 휴가지에 도착한 뒤에도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며 지루한 며칠을 보낸다. 그러다 엄마 손에 이끌려 바다에 발을 담그고 헤엄도 치고 새들과 걷게 된다. 파도가 아이의 발등을 적셨다가 금세 멀어지며 찰랑, 철렁, 찰싹, 쏴아 소리를 낸다. 아이는 차츰 바다가 좋아지기 시작한다.

캐나다에 살고 있는 쿄 매클리어가 글을 쓰고 캐티 모리가 그림을 그린 '나만의 바다'는 처음으로 바다를 만난 아이가 그 아름다움에 눈을 뜨는 순간을 그리고 있다. 가만가만 아이의 감정을 따라가는 글은 바다의 소리와 물빛을 떠올리게 하고 포근한 색감이 번지는 그림은 아련한 추억을 일깨운다.

아이는 밀려왔다가 물러가기를 되풀이하는 파도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바다의 시간은 늦는 법도 없고, 급히 서두르는 법도 없어. 누가 누가 빠른가 겨루지도 않지."

바다는 묵묵히 자기 일을 할 뿐이다. 아이는 바다가 너무 좋은 나머지 바다를 갖고 싶어진다. "바다를 어항에 담아 도시에 있는 우리 집으로 가져가고 싶어."

그러자 오빠는 바닷물을 자꾸 퍼가면 바다가 없어질 수 있다고 말린다. 아이는 다시 생각에 잠긴다. "바다가 없으면 지구는 어떻게 될까, 알록달록한 산호는 색이 바랠까, 커다란 달을 비추던 거울이 사라져 버릴까."

그래서 아이는 바다를 상상하기로 한다. 어항에 담아갈 수 없지만 산호와 산호 사이에서 헤엄치는 온갖 바다생물을 떠올린다. 너무 깊어서 보이지 않는 깊은 바다에 숨어있는 말없는 생물들까지 상상해본다. 아이에게 바다는 '고요'의 바다가 아니라 '고유'의 바다다. 누구나 부르는 것 말고 혼자 속으로 부르는 이름을 그렇게 붙여준다.

익숙함 속에 머무르다가 새로운 환경에 발을 내딛는 용기, 싫어했던 것을 좋아하게 되는 경험을 나눌 수 있는 그림책이다. 권예리 옮김. 바다는기다란섬.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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