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히 20층은 넘어 보이는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 여자가 무너진 담벼락에 온 몸을 벗은 채 쭈그리고 앉았다. 서울 모래내 철거 지역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여기저기 잔해가 흩어진 채 뼈대만 남은 집은 빛바랜 지붕 기와가 온기 깃들었던 한 시절을 간신히 말해주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자연재해로부터 도망치듯 주민들은 이곳을 떠났으리라. 대기업이 지은 아파트가 코앞인데 철거민들은 어는 곳에 짐을 풀어 놓았을까. 발가벗은 여자는 그 현장에서 묻는다. 이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가옥들을 헐어버리고 뒤에 병풍처럼 둘러친 고층아파트를 더 나은 삶의 터전으로 지향하는 것이 과연 우리 역사의 올바른 방향일까?
벗은 몸이 나오는 사진을 통해 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얼마나 딱딱하고, 춥고, 날카롭고, 더럽고, 망가져 있는지 드러내온 김미루 작가. 도올 김용옥 선생의 딸로 문명의 한계와 생명의 본질을 파고드는 작업을 벌여온 그가 '죽음의 이미지'로 뒤덮인 사막으로 향했다. 2012년 정월에서 시작된 여행은 전 세계의 사막으로 이어졌다. 3년에 걸쳐 말리, 이집트, 모로코의 사하라 사막, 요르단의 아라비아 사막, 인도의 타르 사막, 몽골리아의 고비 사막을 끝도없이 헤맸다. 그는 사막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사막, 그 빈자리를 찾아서'란 부제가 달린 '김미루의 어드벤처'는 사막에서 모험을 이어가는 여정의 기록이면서 작품이 탄생되는 과정을 소개한 내면의 고백을 담고 있다. 낙타와 사막에 관한 작품이 그 과정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단순함, 소박함? 아마도 사막에서 내 뺨을 스치는 다양한 공기의 감촉이었을까? 동물들의 여운있는 울음소리였을까? 맨발로 걸어갈 때 느끼는 모래의 감촉이었을까? 질병과 더러움의 공포를 근원적으로 상실했을 때, 나는 이전에 느낄 수 없었던 평화와 아름다움의 감각을 획득했다."
사막에 첫 발을 디뎠을 때 한번도 세탁한 적이 없는 담요와 오염된 물에 기겁했던 작가는 차츰 그 현실에 동화되어 간다. 사막은 그에게 '위대한 해독제'였다. 사막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곳에서 찍은 사진들은 자연의 크나큰 아름다움, 인간의 숭고한 삶을 보여준다.
작가는 사막을 누볐던 모험을 촛불로 새로운 정권을 탄생시켰던 우리 사회의 모습과 연결지었다. 모험은 불확정의 공간에 자신을 내던지고 기획하지 않은 미래로 들어가는 일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옛 사고방식을 다 떨쳐버리는 모험을 감행하지 않으면 새로움은 없다. 통나무.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