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19일 제주시청 어울림마당에서 열린 베이비부머세대 등 장·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취업박람회. 사진=한라일보 DB
100세 장수 시대 맞아 '65세 이상=노인' 등식 변화'젊은 어른' 베이비부머 새로운 노년상 제시 기대부모 부양·자녀 지원 부담에 노후 준비 부담으로 작용인생 재설계 지원 없이는 고령화 충격 키울 수도
'100세 시대'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몇몇 사람들만 가능하다고 여겼던 백세 장수가 누구에게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미 유엔은 현재를 '호모 헌드레드'(homo-hundred) 시대로 정의했다. 2009년 작성한 세계인구고령화 보고서에선 평균 수명이 80세를 넘는 국가가 2000년에는 6개국에 불과했지만 2020년엔 31개국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평균 수명의 증가는 '65세 이상=노인'이라는 등식의 변화를 예고한다. 새로운 세대적 특성과 요구를 가진 '젊은 어른'의 등장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가 있다. 한국전쟁 이후 출산율이 급증하면서 태어난 이 거대 인구 집단은 이전과는 다른 노년 상을 제시할 거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한라일보는 이번 기획을 통해 베이비부머의 '인생 2막' 준비를 들여다보려 한다. 지난 한 해 이어왔던 '초고령사회로 가는 길- 제주의 준비와 대응은', '장수의 섬 제주, 고령친화도시로' 기획의 연장선 상에 있다. 베이비부머가 마주한 고민과 새로운 삶의 준비 과정 등을 통해 우리 사회가 안은 과제를 제시하고 해법을 모색한다. 고령화 시대에선 베이비부머의 인생 재설계를 결코 개인의 몫으로만 돌릴 수 없다.
▶노인 세대 진입 앞둔 베이비부머= 제주특별자치도에 따르면 도내 베이비부머는 지난해 8월말 기준으로 8만6525명이다. 이는 제주 총 인구 수(65만1888명)의 13.3%에 달한다. 같은 기간 65세 이상 노인 인구(9만1856명, 14.1%)와 맞먹는 규모다. 베이비부머가 노인 세대에 진입하게 되면 도내 고령화가 더 빨라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앞으로 2년 뒤인 2020년부터 적게는 8000명에서 많게는 1만명까지 해마다 노인 인구가 늘게 된다.
베이비부머는 기존 노인 세대와 달리 교육 수준과 가구 소득이 높고, 직업의 전문성 등을 갖춘 게 일반적인 특징으로 거론된다. 이에 전문가들은 베이비부머의 노년기는 현재와는 분명히 다를 거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부모 부양과 자녀 지원의 책임을 동시에 짊어지는 '낀 세대'인 만큼 노후 준비 자체가 버겁다. 본격적인 은퇴기를 맞았지만 앞으로의 경제·사회참여·여가활동 등은 큰 고민거리다.
서울시 50플러스 중부캠퍼스 상담센터. 이곳에선 전문성을 갖춘 50+컨설턴트를 통한 종합 상담이 이뤄진다. 사진=한라일보 DB
▶"퇴직 이후 생활 막막해"= 도내 베이비부머들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제주연구원이 2013년 펴낸 '제주지역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 후 고용 및 사회참여 활성화 방안'(고승한·김기홍) 연구에선 퇴직을 앞둔 이들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베이비부머가 마주한 고민은 자녀 지원, 퇴직 이후의 삶 등으로 모아졌다. 해당 연구에서 설문조사에 참여한 도내 베이비부머(387명)의 24.3%가 '자녀교육'을 고민사항 1순위로 꼽았다. 이어 '퇴직 후에도 경제적 활동에 계속 참여하는 일'(81명, 20.9%), '자녀 결혼'(70명, 18.1%), '퇴직 후 여가활동을 하는 일'(60명, 15.5%), '퇴직 준비하는 일'(47명, 12.1%), '부모님 모시는 일'(28명, 7.2%) 순으로 고민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걱정과 달리 퇴직 준비를 제대로 하고 있다는 응답은 절반을 갓 넘겼다. 경제 활동에 종사하고 있는 베이비부머(272명) 중 7.4%(20명)만이 퇴직 준비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고 했고 '조금 하고 있다', '그저 그렇다'는 긍정 응답률은 각각 29.8%(81명), 21.3%(58명)였다. 나머지는 퇴직 준비를 '전혀 하고 있지 않다'(56명, 20.6%)거나 '대체로 하고 있지 않다'(44명, 16.2%), '모르겠다'(13명, 4.8%)고 답했다.
▶베이비부머 인생 2막 지원, 어떻게 하나= 노후 준비가 덜 된 베이비부머의 노인 세대 진입은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위험요소이다. 이들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집단 은퇴 시기에는 노동 생산성 하락, 노인 빈곤 문제 등 고령화의 충격이 더 거셀 수밖에 없다. 베이비부머를 새로운 기회와 자원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이 이는 것은 이러한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국내에서도 이 같은 움직임은 시작됐다. 제주보다 일찌감치 세계보건기구(WHO) '고령친화도시 국제네트워크' 회원도시에 가입한 서울특별시, 부산광역시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지역은 예비노년층의 인생 2막을 지원하기 위해 별도의 조직을 두고 일자리모델 발굴, 맞춤형 교육 지원 등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시는 베이비부머를 넘어 중장년층을 보다 넓게 껴안았다. '50+세대'(만 50~64세, 베이비부머·신노년 등으로 일컫는 중장년층)를 지원하기 위한 전문 기관인 '50플러스재단'을 설립해 정책을 개발하고 종합상담, 교육 등을 통해 새로운 삶의 준비를 돕고 있다. 부산시도 2016년 6월 '장년층 생애재설계 지원 조례'를 제정한 데 이어 종합지원계획을 수립하고 '부산형 베이비부머 일자리사업', '50+생애재설계대학' 등을 진행 중이다.
제주에서도 지난해 예비노년층을 위한 노후준비정책인 '탐나는 5060 프로젝트'(2017~2019년, 사업비 74억8200만원)가 마련돼 추진되고 있다. 제주도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일자리, 사회활동, 교육, 기반 구축 등 4개 분야에서 26개 과제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처음으로 중장년층을 위한 교육과정인 '탐나는 5060 인생학교'를 운영했고 베이비부머의 노후 준비를 지원하기 위한 '탐나는 5060 인생재설계 만남의 광장'을 개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막 걸음을 뗀 만큼 일회성 지원책이 되지 않기 위한 행정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베이비부머를 위한 정책은 기존 노인복지정책과는 차별화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세대적 특성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도내 베이비부머의 현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이서연 제주고령사회연구센터 연구원은 "베이비붐 세대들이 살아온 사회적 상황은 현재 노인들의 생애와는 전혀 다르다"면서 "기존 노인복지정책만으로 베이비붐 세대의 노년기를 대비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고 했다. 이어 "그런데도 아직까지 제주지역 베이비붐 세대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대규모 조사 연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 예비노인 세대에 대한 주기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지은·홍희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