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 소재 모 식당에서 70대 중반 여성 세 명이 친구 모임을 가졌다. 이들의 대화는 70년 전 어린 시절의 기억에 초점이 맞춰졌다.
"느의 아버지 때문에 우리 아버지도 엮여서 돌아간 것 아니니. 같은 집안 사람이라고 말이야"(A씨), "우리 아버지가 좀 똑똑하다는 소리를 듣긴 했다네, 아버지가 목포 형무소에서 돌아가셨잖아. 그런데 시신도 찾지 못했지"(B씨), "그때 젊은 사람들도 지금처럼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을테고, 그래서 어떤 일에 동조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다 죽여버렸으니…"(C씨)
지금은 서울에 살고 있는 A씨와 B씨, 그리고 제주에서 사는 C씨는 모두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출신이다. 이들은 불과 5~6살 때 4·3으로 모두 아버지를 잃었다.
이들의 만남은 B씨가 4·3 이후 홀로 남은 어머니와 함께 강원도로 이주한 뒤 연락이 닿지 않다가 우연히 성사됐다. 세 친구는 이날 70년 전 4·3 당시 울먹이던 어린아이들로 돌아가 있었다. 4·3 이후 이들은 정부가 진상 조사에 나설 때까지 누구에게도 하소연조차 하기도 어려운 삶을 살아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들 모두가 4·3의 참상을 그대로 경험했지만 특히 C씨는 아픔이 많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당시 북촌초등학교로 불려 나간 뒤 돌아오지 못했다. 가족은 마을이 불에 타자 함덕으로 피신했다가 되돌아와 움막생활을 했다. 움막 생활 몇 달만에 어린 동생은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났다. 나중에 북촌 출신과 결혼했는데 그 역시 4·3 때 어머니 등 가족을 잃은 슬픔을 겪은 이였다.
이상의 이야기는 기자의 어머니와 그의 친구들의 만남의 장면을 담은 얘기다. 문재인 정부는 4·3의 완전한 해결을 국정과제로 내걸었다. 4·3 70주년인 올해는 이들의 아픔이 조금은 덜어질 수 있을까.
<부미현 정치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