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영종의 백록담] 베네치아의 경고

[현영종의 백록담] 베네치아의 경고
  • 입력 : 2018. 01.08(월) 00:00
  • 현영종 기자 yjhyeo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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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에 2000여명의 시위대가 등장했다. 시민 시위대는 '우리는 떠나지 않는다(Mi no vado via)'는 플래카드를 들고 "우리는 관광객을 원치 않는다" "거주권을 보장하라"고 외쳤다.

관광객에 치여 사는 베네치아 주민들의 불만은 임계점에 이르렀다. 베네치아는 물의 도시로 유명한 세계적 관광지이다. 매년 30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몰린다. 2016년 기준으로 당일 방문만 연간 2400만명에 이른다. 체류 방문도 900만명에 달한다.

관광산업을 시민들의 삶보다 우선 순위에 두는 바람에 시민들의 일상생활은 불가능해졌다. 관광 수입보다 집값·생활물가가 더 가파르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집을 사는 것은 고사하고 장기 임대도 불가능한 지경이다. 밤 늦게까지 고성방가에 시달리거나 운하에서 소변을 보는 관광객들을 지켜봐야 하는 것도 이제는 일상사가 됐다. 지역의 정체성도 시나브로 사라져 간다.

서울 종로구가 북촌한옥마을·이화마을·세종마을에 관광객들의 출입제한시간을 두기로 했다. 이른 아침·밤의 '생활시간'과 낮의 '관광 가능 시간'을 나눠 주민들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출입제한시간에 관광객의 방문을 자제할 수 있도록 홍보를 하고 여행사에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다. 모두 합해 4만여명이 거주하는 이들 마을에는 하루에만 8배에 가까운 30만명의 관광객이 돌아다닌다.

제주라고 예외는 아니다. 적잖은 도민들이 급증하는 관광객으로 인해 삶의 질을 위협받고 있다. 비행기표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가 된지 오래고, 주요 도로는 차량들로 뒤범벅이다. 시내 숙박업소·유명 음식점 주변에서는 고성방가 등 꼴불견이 심심찮게 목격된다. 주요 도로에 무단횡단을 방지하는 현수막·교통시설물이 내걸리거나 들어설 정도로 기초질서도 엉망이 됐다. 사건 사고 또한 끊이지 않는다.

한국은행 제주본부가 얼마전 '제주 투어리스티피케이션 현상이 지역주민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내놨다. 연동, 월정리, 세화리, 성산, 함덕해수욕장, 동문시장 등 10개 지역 인근에 사는 지역주민 200명을 대상으로 투어리스티피케이션 현상에 대한 인지도와 삶의 질을 측정한 것이다.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ication)이란 관광지가 되어 간다는 '투어리스티파이'와 낙후됐던 구도심이 번성하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인 '젠트리티피케이션'의 합성어다

분석 결과 '관광객들이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응답이 39.8%로, '그렇지 않다'(31.9%)를 앞섰다. 특히 부동산 가격과 관련해선 '불만족'(57.1%)이 '만족'(7.9%)을 크게 앞질렀다. 지역물가 또한 '불만족'(61.8%)이 '만족'(8.9%)보다 훨씬 높았다. 하지만 이같은 부정적 인식에도 불구 '관광개발을 지지한다'는 비중은 41.9%로, '반대'(21.5%)보다 높았다. '관광개발이 지속적으로 이뤄졌으면 좋겠다'(47.6%) 비중도 '반대'(22.0%)를 갑절 이상 웃돌았다.

오는 손님을 강제로 막을 수는 없다. 수용 가능한 적정관광객 수를 산출하고, 유도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관광체질의 개선이 시급하다. 양적성장 위주의 정책으로는 부정적 인식을 줄일 수 없다. 관광시장 다변화에도 더욱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관광체질 개선과 시장 다변화 없이는 공염불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불어 관광으로 인한 이익을 지역주민들이 향유할 수 있도록 법·제도적 정비도 서둘러야 한다. 임계점을 향해 치닫는 주민들의 불만을 줄이지 않고는 관광산업을 영위할 수 없다. 베네치아가 우리 제주에 주는 교훈이다.

<현영종 편집뉴미디어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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