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축 즐겨 먹어 온전한 모습 보기 힘들어한라산 중산간의 초가지붕 잇는 띠와 비슷
저 푸른 초원, 몽골을 연상할 때면 늘 떠오르는 말이다. 실제 몽골에 도착하면 공항에서부터 초원을 마주하게 되고 그 외 어디를 가든 초원이 아닌 곳이 없다. 한여름 이곳을 방문해 보면 말을 타거나 자동차를 타거나 심지어 비행기를 타도 푸르디 푸른 초원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몽골은 초원의 나라라고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 사실 몽골만이 아니라 중앙아시아 대부분이 이런 초원으로 되어 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유목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초원에서 가장 많은 식물은 어떤 종일까? 푸른색 아닌 식물이 어디 있을까만은 그래도 그 중에 어떤 종이 이토록 몽골의 초원을 푸르게 만드는 것 일까? 필자가 몽골초원에 처음 발을 내디뎠을 때 가장 궁금했던 것은 바로 이 물음이었다. 실제로 몽골 학자에게 한 첫 질문도 바로 이것이었다. 당시의 답변 역시 그러했지만 그 후 10여년의 탐사를 통해서 몽골 초원에 가장 흔한 것은 바로 나래새속(
Stipa)의 식물들임을 알게 되었다. 이른 봄에 지하줄기에서 싹이 나와 1m 가까이 긴 잎을 낸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누웠다간 일어난다.
푸르공이라고 부르는 러시아산 자동차로 비포장길을 달리는 데는 아주 유용한 11인승 자동차다.
마치 한라산 중산간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면서 제주 초가지붕을 이는 띠(
Imperata cylindrica)와 같은 느낌을 준다. 몽골초원에서 쌍자엽식물 중에서는 쑥 종류가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다고 한다면 단자엽식물 중에서는 아니 전체적으로도 단연 이 나래새 종류가 가장 많은 종일 것이다. 초원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종은 거의 모든 가축이 즐겨 먹기 때문에 성할 날이 없다. 그러니 자신이 원래 모습을 보여줄 만큼 자랄 시간이 없는 것이다. 방문객이 볼 수 있는 나래새의 모습이란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새싹이 돋아나는 봄이거나 이른 여름인데 이 시기엔 가축의 먹이 활동도 왕성할 때다. 뜯기고 뜯겨 겨우 수 ㎝ 정도 밖에 남아 있지 않는 것이다. 마치 골프장의 소위 양잔디라고 하는 버뮤다그라스나 캔터키그라스 같은 종들이 잔디 깎는 기계로 바짝 깎여 정상적으로 자라면 40㎝도 넘게 자랄 것을 불과 5㎝도 채 남아있지 않은 상태를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자갈나래새.
오늘 우리가 탐사하는 루트에서도 커봐야 수천 ㎡에서 크게는 수만 ㎡ 정도의 나래새 군락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광활한 나래새 군락을 볼 수 없는 이유는 이 일대가 주로 자갈이나 모래로 되어 있는 사막으로서 극심한 건조지대기 때문이다. 잘 형성된 나래새 벌판은 수 ㎢에 이르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가 알타이시에 도착하기 직전 자동차 타이어에 펑크가 났다. 사실 몽골초원에서 자동차 고장으로 도움을 청하는 장면은 아주 흔하다. 고비사막을 탐사할 때는 어떤 고장으로 3일간이나 부속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대형트럭을 만난 적도 있었다. 자동차가 멈춘 곳은 마침 나래새 군락이었다. 덕택에 짧은 시간이나마 탐사하게 됐다. 여기는 가축이 비교적 적은지 모르겠지만 나래새의 상태가 아주 좋았다. 그래도 나래새 종류들은 몽골에서 17종이나 될 뿐 아니라 이삭이나 까락 같은 꽃과 열매의 형질이 없이는 종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전체적인 특징을 볼 때 자갈나래새(스티파 글라레오사,
Stipa glareosa)로 동정되었다. 학명 중 글라레오사가 '자갈이 많은 곳에 자라는'의 뜻을 가지므로 우리말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
초원국화.
그 외에도 몇 종의 식물들을 볼 수 있었다. 지금 꽃이 피어 있는 종으로 초원국화(아야니아 프루티쿨루스,
Ajania fruticulosa)가 눈에 띈다. 이 식물의 속명 아야니아는 러시아 하바로프스키의 아얀(Ayan 항)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우리나라에 이와 같은 속 식물은 아직까지 알려진 바 없다. 국화과 식물이면서 외모가 전체적으로 소형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재배하는 국화와 아주 닮았다. 또한 몽골 외에도 러시아, 중국,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의 초원과 사막에 널리 분포하므로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
제주도에 분포하는 종으로는 엄밀한 의미에서 같은 속 식물은 아니지만 가을에 산야를 노랗게 물들이는 산국과 감국을 비롯해 남구절초, 한라구절초 등이 혈연적으로 가까운 종들이다.<글·사진=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서연옥·송관필·김진·김찬수>
한라산 식물 북방요소 나래새
제주도에 자라는 제주나래새 표본.
나래새속 식물은 전 세계에 대략 100여종 정도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아시아와 유럽의 온대와 난대, 특히 건조한 지역에 자란다. 몽골에 17종, 중국에 23종이 분포한다.
우리나라에는 4종이 분포하고 있다. 자료에 따르면 참나래새(스티파 코리아나,
Stipa coreana)는 경기도, 충청북도, 전라남도(내장산)에 자라는데 중국과 일본에도 분포한다고 한다. 수염풀(스티파 몽골리카,
Stipa mongolica)은 우리나라에서는 백두산에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곳 몽골에서 중국을 거쳐 러시아의 시베리아까지 널리 퍼져 있다. 가는잎나래새(스티파 시비리카,
Stipa sibirica)는 백두산을 포함한 북한지방의 고지대에 널리 분포하고 있는 종인데 이곳 몽골 초원에도 널리 분포하며,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코카서스와 히말라야에 걸친 아주 넓은 지역에 자라고 있다.
나래새(스티파 페키넨시스,
Stipa pekinensis)는 제주도를 포한한 한반도 전역에 분포하는 종이다. 우리나라와 이웃하고 있는 중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러시아의 아무르, 쿠릴, 사할린, 시베리아 일대에 공통으로 자라는 종이다.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표본실에는 제주나래새(
Stipa coreana var. japonca)와 나래새의 표본이 있다. 참나래새의 한 변종인 제주나래새는 서귀포시 색달동에서 채집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에만 자란다. 여러 문헌에서 참나래새는 제주지역에 없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다른 사실로써 주목된다. 외국으로는 일본에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이 속의 다른 식물들과 비교해 보면 비교적 좁은 지역에 분포하는 종이다.
나래새 역시 주목되는 종이다. 이 종은 한반도, 중국, 일본은 물론이려니와 시베리아, 아무르, 쿠릴, 사할린 등 주변국과 북방의 광활한 지역에 분포하는 종이다. 한라산에 분포하는 식물 중 북방 요소 중의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