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함께] 4·3순례시집 낸 김경훈 시인

[저자와 함께] 4·3순례시집 낸 김경훈 시인
"참혹한 그날 지켜본 까마귀의 눈으로"
  • 입력 : 2018. 02.22(목) 2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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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을 끈질기게 시로 그려내고 있는 김경훈 시인이 4·3유적지 기행 중에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제주 안팎 4·3유적지 순례
원통한 혼백들 목소리 곳곳

공동체 회복 염원한 저항들


그의 제주4·3유적지 순례는 10년전 부터 시작됐다. 인터넷 카페에 일정을 공지하면 뜻맞는 이들이 자연스레 모여 길을 떠났다. 60여회 여정이 이어졌다. 그는 다신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눈물 배인 역사의 현장을 지켜본 까마귀의 눈이 되어 시를 써내려갔다.

'트럭에 실려 가는 길/ 살아 다시 못 오네// 살붙이 피붙이 뼈붙이 고향마을은/ 돌아보면 볼수록 더 멀어지고// 죽어 멸치젓 담듯 담가져/ 살아 다시 못 가네'('섯알오름 길'에서)

제주 김경훈 시인의 '까마귀가 전하는 말'에 실린 시편 중 하나다. 시인은 지금까지 낸 시집 중 절반 이상을 4·3 시만으로 채웠다. '고운 아이 다 죽고', '한라산의 겨울', '눈물 밥 한숨 잉걸'이 그랬다. '까마귀가 전하는 말' 역시 4·3을 다루고 있다. 90여편의 시들은 4·3 유적지에서 길어올렸다.

시집은 '인민위원회'로 열린다. '1947년 3월 1일', '점령군', '해주대회', '초토화작전', '계엄령', '하산', '1949년 10월 2일, 정뜨르비행장'이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20여편의 시를 순서대로 짚다보면 4·3의 전 과정이 읽힌다.

유적지 순례는 회천리 '꺾어진 비석'에서 출발해 제주섬을 동쪽으로 일주한 뒤 제주4·3평화공원까지 다다른다. '북촌리에서', '터진목', '의귀리 삼각관계', '정방폭포에서', '동광리', '관덕정' 등 제주 땅 어느 곳 4월의 피를 흘리지 않은 곳이 없다.

4·3은 제주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시인은 뭍밖 순례에서 원통한 혼백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4·3 당시 20세 이하 소년들이 수감되었던 인천소년형무소는 인천남부경찰청으로 바뀌었다. 대전시 동구 골령골은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었던 제주사람들이 학살된 장소다. 지금도 유해들이 묻혀있는 그곳에서 시인은 '그리운 고향으로 더욱 가지 못 하고 죽은 자리에 그냥 머물러 있다네'라고 읊는다.

시인과 동행해 유적지를 누볐던 가수 최상돈에 따르면 그는 언젠가 크게 아파 입원했을 때 4·3영령들에게 이런 소원을 빌었다. "나 4·3시 더 쓰게 허여줍서!" 시인에게 4·3은 공동체를 되살리려 했던 제주민중들의 저항이었고, 그는 그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

'많은 사람들이/ 제주 4·3에서 무수한 제주도민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억울하게 죽어갔다고 말한다// 그런가/ 정말 그러한가//제대로/진실을 말하자//제주4·3은 아무런 이유없이 억울하게 죽은 것이 아니라/ 죽어서 아무런 이유가 없어져버린 것이 억울한 것이다'('아무런 이유 없이'). 도서출판각. 9000원.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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