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대사가 눈꺼풀을 도려낼 때만큼이나 아프게 잠 못 이루는 시간이 있었을 겁니다. 그 당시엔 우리 마음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들이 가장 고통받았을 겁니다.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의 이야기, 통증에 대한이야기입니다."
오멸 감독은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한다. 준비하던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세월호의 원혼들을 달래는 영화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제주 4·3 사건을 영화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2013)로 풀어냈던 그에게는 학생들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중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도 아프게 다가왔다.
고승 달마대사는 눈꺼풀이 없었다. 어두운 동굴 안에서 면벽참선을 하던 중 졸음이 쏟아지자 눈꺼풀을 잘라내 버렸다고 한다. 고통을 감내해가며 세상을 똑바로 보려는 간절함이 영화 '눈꺼풀'에 담겼다.
영화는 죽은 자들이 마지막으로 들른다는 섬 '미륵도'에서 진행된다. 노인(문석범 분)은 먼 길을 떠나는 이들에게 이승의 마음을 전하는 떡을 만든다. 별다른 대화도 없이 그저 정성스레 쌀을 빻아 만든 백설기를 대접할 뿐이다.
평화롭던 바다에 어느 날 폭풍이 휘몰아친다. 선생님(이상희)과 학생 두 명이 섬에 찾아온다. 아이들은 왜 섬에 들렀는지 알 길이 없다. 선생님은 그저 떡을 먹고가야 한다고 말할 뿐이다.
그러나 노인은 이제 떡을 만들 수 없다. 쌀을 빻을 절구통이 부서졌다. 쥐 한 마리 때문이었다. 쥐는 노인과 세상을 연결하는 통로인 라디오를 망가뜨리고, 우물물도 오염시킨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정도다. 대사는거의 없고, 생명과 슬픔을 가리키는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 카메라는 뱀·염소·지네·풍뎅이 같은 생물들을 가까이서 자주 비춘다. 이들이 섬의 주인이라면, 쥐는 침입자이자 파괴자다.
절구는 원혼을 달래는 데 필요한 도구이자 무너진 사회 시스템을 은유한다. 오멸 감독은 최근 시사회에 이어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절구는 가난했던 시절 쌀을 빻아 손님을 대접하는 도구였다"며 "기형적으로 바뀐 시스템에 대한 상징으로 절구를 끌어들였다"고 설명했다.
오멸 감독은 2014년 8월 스태프 다섯 명과 함께 무인도에 들어가 캠핑 생활을 하며 작업했다. 영화에 나오는 떡도 직접 만들었다. "떡을 만드는 데 1박2일이 걸립니다. 정성이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제의라기보다는 노잣돈 주듯, 떡 한 조각이라도 먹고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떡 이야기를 집어넣었습니다."
제주출신 오멸 감독.
영화는 세월호 참사 이듬해인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감독 조합상과 CGV아트하우스상을 수상하며 호평받았다. 그러나 극장 개봉까지 또 3년이 걸렸다. 오멸 감독은 "2014년에 '다이빙 벨' 문제가 있었고, 조심스러운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개봉하지 않는다고 욕도 많이 먹었다"며 "독립영화로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업을 할 때 많은 한계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질문하는 영화입니다. 그때는 그것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7시간'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기 시작하고 조금씩 가능성이 생기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피로감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만 세월호 문제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다가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와 관련된 작업을 꾸준하게 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