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실미도'가 1000만 관객 시대를 연 이래 한국 영화에선 '꿈의 기록'을 달성한 작품이 잇따랐다. 그러나 여성의 시각으로 인구가 5000만인 나라에서 1000만이 같은 영화를 보는 이 놀라운 현상을 읽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남성중심적 소영웅주의의 서사가 가동된 한국 영화들에서 최첨단 테크놀로지의 덕을 본 박진감 넘치는 화면은 남성성의 경연장이 되었다. 여성들은 주변화되거나 남성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으로 은유됐다. 관객 1000만을 극장으로 끌어온 '실미도'와 '태극기를 휘날리며'에서 그같은 남성성에 대한 집중은 절정에 달한다.
주유신의 '시네페미니즘'은 이처럼 영화 속에서 한국 사회의 젠더이데올로기와 성적, 정치적 무의식은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들여다본다. 특히 한국영화의 이상 열기 속에 침묵 당하거나 배제당한 것이 무엇인지를 물으며 그 텍스트들이 타자들에 대한 '착취적인 재현'에 기반하고 있지 않은지 분석하고 있다.
19세기 말에 등장한 영화는 20세기 들어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예술 장르이자 대중 매체의 하나로 자리잡는다. 하지만 영화가 문화산업으로서 상업성을 추구하는 과정에 성적 표현이 빈번하게 드러나고 여성의 육체를 노골적으로 전시한다. 대개 남성의 육체가 노골적으로 전시되거나 성애적인 시선의 대상으로 놓이는 것이 기피되는 반면 여성의 육체는 끊임없이 성애적인 스펙터클과 물신적 이미지로 재현된다.
저자는 '여성의 시각으로 영화를 읽는 13가지 방법'이란 부제 아래 여성의 눈으로 영화를 본다는 의미, 페미니즘이 등장한 서구에서 성 정치학이 지니는 쟁점과 지향, 한국 영화 속 젠더 문제 등을 좇는다. 멜로, 공상과학, 포르노 등 장르 영화 속에서 재생산되고 구조화되는 여성에 대한 재현의 문제도 살폈다.
그는 이같은 작업이 가부장제적 질서 속에서 모든 것들을 다르게 바라보고 평가할 수 있는 타자적인 시선은 물론 소수자들과 연대할 수 있는 정치적 가능성을 제공해준다고 본다. 이는 남성의 목소리로만 일방적으로 울려 퍼지는 주류 영화 담론에 저항하고 균열을 내면서 그 안에 억압되어 있는 것들에 목소리를 부여하는 일이라고 했다. 호밀밭. 2만5000원. 진선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