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시작은 남들과 다르지 않았다. 매일 아침 허걱대며 주어진 일을 처리해야 했고 저녁에는 오늘과 같은 내일을 두려워했다. 그는 익숙한 일상에 면역력이 생길까 싶어 더 늦기 전에 멀리 떠나기로 한다.
목적지는 쿠바였다. 한국에서 쿠바로 가려면 캐나다를 경유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두 가지다. 그는 경비가 조금 더 저렴한 캐나다 미경유 코스를 택했다. 인천, 모스크바, 쿠바 행이었다. 러시아가 끼어들자 여행의 콘셉트가 잡혔다. 냉전이었다. 마침, 귀국 여정은 뉴욕에서 인천으로 돌아오는 중에 중국 상하이를 경유하게 되었다. 이랬더니 러시아-쿠바-미국-중국의 '대냉전 코스'가 저절로 그려졌다.
제주출신 정용(본명 허정용)의 '코카-콜라 쿠바'는 모든 것이 낯선 쿠바에서 보낸 한 때를 담아낸 책이다. 표제에서 짐작하듯 분단국가에 살고 있는 한국인이 쿠바를 돌아본 여행기지만 거기엔 이념도, 대립도, 갈등도 무의미한 익숙한 삶과 풍경이 있었다고 말한다. 자본주의 국가든, 사회주의 국가든 콜라를 마시는 즐거움은 똑같으니 말이다.
스무 시간의 기나긴 비행 끝에 쿠바에 발디딘 저자는 화려한 색감으로 뒤덮인 이국적인 사진을 곁들여 아직 우리에겐 낯선 땅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콜럼버스가 쿠바를 발견한 일을 시작으로 시대순으로 쿠바의 역사를 좇는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이 여정에 낯익은 이름들이 등장한다. 늙은 쿠바 뮤지션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쿠바의 럼과 바다에 빠져 노년을 보내며 소설 '노인과 바다'를 건져올린 헤밍웨이, 혁명가이자 독재자였던 피델 카스트로, 피델과 더불어 쿠바 혁명에 뛰어든 체 게바라 등이다.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더 나은 세계를 꿈꿨던 쿠바이지만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의 해결과 점점 더 벌어지는 상대적 박탈감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눈앞에 놓여있다. 그 나라의 젊은 세대들에겐 쿠바 혁명, 피델 카스트로 같은 이야기는 '노잼'이다. 갖가지 정보와 소비 문화가 흘러들었고 그들 역시 척도나 수단만 다를 뿐 일상의 행복을 원하고 있었다.
쿠바 여행기는 다음을 기약하며 마무리 짓는다. "아메리카 유일의 사회주의 국가, 쿠바가 지나왔던 길에서 단순하면서도 보편적인 진리를 깨닫는다. 삶은 어디서든 아름답다는 것을. 쿠바는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스노우폭스북스. 1만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