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19일 4·3수형생존인들을 대신해 변호인이 제주지방법원에 재심 청구서를 제출하고 있다. 한라일보DB
제주4·3 수형인 생존자 재심사건작년 4월부터 시작 6월에 마무리심문기일 5차례… 내달 결정 주목진상보고서 군법회의 불법성 인정
4·3당시 군법회의 불법성이 입증되고 재심이 이뤄질까. 지난해 4월 19일 시작된 '제주4·3수형인 생존자 재심사건' 심문기일이 5차례 열린 끝에 지난 달 14일 마무리되면서 유족과 도민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사건을 맡은 제주지방법원은 청구인들이 고령인 점 등을 감안 오는 8월 중 재심 수용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재심 수용 여부에 대해 법원은 통상 청구인에게 결정일을 통보해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재심을 청구한 수형생존자 18명의 평균 나이는 89세, 가장 많은 나이가 97세, 가장 적은 나이도 85세에 이른다. 이들은 심문기일에 참석, 옥살이를 하면서 겪었던 억울한 고통을 털어놨다.
하지만 당시 군법회의 재판을 입증할 증인진술서나 공판조서, 판결문 등이 확인되지 않아 재심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형사소송법 제420조(재심이유)에 따르면 재심 청구를 위해서는 청구 취지와 재심 사유를 구체적으로 기재한 재심청구서에 원심판결의 등본, 증거자료, 증명서를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지난 3월 19일 재심을 청구한 4·3수형생존인 부원휴(89)·김평국(88)·현창용(86)·오희춘(85)씨가 재판을 받기 위해 제주지방법원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현재까지 4·3수형인 관련 기록은 1999년 추미애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국회의원이 정부기록보존소에서 발견한 '수형인 명부'가 전부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수형인 명부가 사후작성 의혹이 있는 등 적법성에 의문이 있다며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다행히 재심을 청구한 변호인측이 심리 과정에서 군법회의가 열렸다는 당시 국방부와 검찰 내부 자료 등을 발굴해 재판부에 제출하면서 재심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지난 4월 30일 제주지방법원 형사2부(재판장 제갈창)가 연 이번 재심사건 세 번째 심문기일에서 수형생존인 2명의 '군집행지휘서'가 공개됐다. 앞서 변호인측은 국가기록원에 재심 청구인 18명과 관련된 자료를 요청했는데, 1949년 7월 군사재판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 수감됐던 오영종(88)·현우룡(93)씨의 군집행지휘서가 확인된 것이다.
공개된 군집행지휘서에는 4·3 당시 제주도 군 책임자인 수도경비사령부 함병선 제2연대장(육군대령)이 대구형무소장에게 오씨와 현씨 2명에 대한 형 집행을 요청하는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수형자 이름을 적어놓고 '오른쪽 사람은 별지 군법회의와 같이 판결이 확정 되었사오니 즉시 집행함을 요함'이라고 적혀 있으며, 단기 4282년(1949년) 7월 18일이란 날짜와 함병선 제2연대장의 직함도 찍혀 있다. 또 판결언도일과 죄명, 집행명령일, 판결 결과 등도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다.
제주4·3 당시 제주도 군 책임자인 수도경비사령부 함병선 제2연대장(육군대령)이 대구형무소장에게 형 집행을 요청하는 내용이 담긴 군집행지휘서.
특히 현재까지 유일한 기록으로 알려진 '수형인 명부'와도 연결돼 있다. 이 명부는 1948년 12월과 1949년 7월 제주에서 군사재판을 받은 2530명의 이름과 형량, 형무소 등이 기록된 명단으로 당시 군사재판의 설치, 죄목, 재판 내용 등이 적힌 '군법회의 명령'의 별지로 첨부돼 있다. 군법회의 명령에도 이번에 공개된 군집행지휘서와 마찬가지로 함병선 제2연대장의 직인이 찍혀 있는 것이다.
재심 청구를 주도한 4·3도민연대는 "재판부에 제출된 군집행지휘서는 수형인명부 외에도 다른 공문서를 통해 1949년 군법회의가 실제 이뤄졌다는 것을 입증하는 중요한 증거"라며 "군집행지휘서를 통해 수형인 명부 기재 내용과 군사재판 존재 사실이 보다 분명하게 증명된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지난달 14일 마지막 5차 심문기일에서는 1947년 10월 30일 당시 사법부장이 미군정청 대검찰청 검찰총장에게 보낸 형 집행지휘 문서가 공개됐다. 문서에는 '군법회의에서 처형된 피고인에 대한 형 집행 지휘 촉탁시 관할 검사는 해당 수형인을 다른 수형인과 함께 수형인명부에 등재하라'는 지시 내용이 담겼다. 즉 당시 군법회의에서 형이 확정된 수형인들의 명부가 임의로 작성된 것이 아닌 검찰총장의 구체적인 집행 지휘에 따라 진행됐다는 것을 방증한다.
또 다른 문서에서는 1949년 8월 29일 당시 내무부 장관이 법무부 장관에게 '군법회의에서 무죄를 받은 자를 증거보강으로 재검거해 다시 처벌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담겨 있다. 이 문서 역시 당시 국가적 차원에서 군법회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정부기관이 스스로 자백하는 공문서다.
재판부가 재심 개시를 결정하면 70여년 전 재판의 정당성을 다시 판단하는 정식 재판이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린다. 반면 재심 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소송절차는 그대로 끝이 난다. 4·3당시 군법회의 불법성은 진상조사보고서에서도 밝히고 있다. 당시 군사재판으로 희생되거나 옥고를 치른 이들의 누명과 억울함을 풀어주는 일은 70주년을 맞이한 4·3의 중요한 현안이다. 이를 통해 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이뤄지고 완전한 해결로 나아갈 수 있도록 중지를 모아야 할 것이다.
인터뷰 / 양동윤 4·3도민연대 대표"재심 결정 4·3 옳고그름 정의할 수 있는 계기"
"어르신들은 70년 동안 감춰왔던 억울함을 재판에서 털어놓은 것 자체만으로도 시원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수형인 2530명을 위해서라도 재심은 반드시 이뤄져야 합니다. 이와 별도로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준비 중입니다."
지난해 4월 19일 제주4·3수형인 생존자 18명이 재심을 청구한 이래 1년 2개월 동안 이어진 심리가 모두 끝났다. 재판부는 오는 8월 재심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번 재심 청구를 주도한 양동윤 제주4·3진상규명과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이하 4·3도민연대) 대표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재심이 결정돼 4·3 당시 제주도민들이 어떻게 불법구금됐고 억울한 옥살이를 했는지 정식재판을 통해 밝혀져야 합니다. 이는 미완의 역사인 제주4·3의 옳고 그름을 정의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1999년 4·3수형인 명부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4·3도민연대는 2013년부터 현재까지 목포와 전주, 인천형무소 등에서의 수형 실태와 자료를 조사하고, 수형생존인들을 찾아내 그들의 사연을 고스란히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이 모였기 때문에 재심 청구가 이뤄질 수 있었다.
"조사를 거듭할수록 안개가 걷히듯 잘못된 역사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특히 수형생존인들이 '억울함을 풀고 싶다'고 호소할 때는 더욱 재심 청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수형인 관련 업무가 4·3도민연대의 주사업이 됐어요."
재심 청구 당시 "판결문도 없는데 어떻게 재심이 이뤄질 수 있겠느냐"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재판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수형생존인 18명의 증언과 4·3전문가의 의견을 직접 듣는 등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고, 재판 과정에서 군집행지휘서 등 4·3 당시 군법회의가 열렸다는 것을 증명하는 문서도 발굴됐기 때문이다.
"재심이 이뤄지면 생존수형인에게 무죄가 나올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수형인 명부에 기록된 2530명의 억울함을 푸는 것은 물론 현재 지지부진한 제주4·3진상규명 사업을 재개할 수 있는 단초가 될것입니다."
양동윤 대표는 이번 재심 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조사관들은 지금도 제주 곳곳을 돌며 혹시 있을지 모를 수 있는 수형인과 관련 자료를 찾고 있습니다. 이들의 노력이 빛을 봤으면 좋겠어요. 아울러 재심 결정 여부와 상관없이 수형생존인들이 국가로부터 배·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소송을 제기할 예정입니다. 배·보상이야 말로 국가의 잘못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니까요." <자문위원=문성윤 변호사 박명림 연세대교수, 박찬식 제주학센터장 양윤경 4·3유족회장, 특별취재팀=이윤형선임기자·표성준차장·송은범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