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자주 거론되는 '기상이변'은 통계적으로 강수량이나 기온이 30년에 1회 정도의 확률로 발생하는 기상현상을 얘기한다. 그런데 최근 제주에는 예전 기록을 갈아치우는 국지성 집중호우가 자주 쏟아지며 "더 이상 이변으로만은 볼 수 없다"는 얘기들이 나온다.
9월 1일 서귀포시에는 시간당 120.7㎜의 비가 쏟아져 제주 기상관측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역대 최고였인 2016년 116.7㎜(10월 5일 서귀포), 1927년 105.0㎜(9월 11일 제주), 1981년 101.0㎜(8월 10일 성산), 2004년 100.5㎜(8월 22일 성산), 1986년의 100.2㎜(8월 18일 제주)를 뛰어넘은 비였다.
같은달 13일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 자동관측장비로 관측된 일 강수량은 323.0㎜로 공식적인 도내 일 최고 강수량 420.0㎜(2007년 9월 16일 제주), 365.5㎜(1995년 7월 2일 서귀포)에 이은 세번째 기록이었다. 300㎜ 이상의 비로 남원읍 일대 주택과 농경지, 도로 곳곳에서 침수피해가 컸다.
침수피해 원인은 지형적 특성 등 여러 여건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배수시설물 설계빈도를 초과하는 많은 비가 단시간에 내려 배수로가 이를 감당하지 못하거나 하류지역에 빗물이 일시에 유입돼 관로의 통수능력 부족으로 인한 역류, 배수로 미설치 등이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과거에도, 지금 이 시간에도 막대한 예산을 들여 침수예방사업을 벌이지만 이전보다 자주 발생하는 국지성 집중호우와 지역별로 큰 강수량의 편차를 볼 때 이제 과거 기준의 수방대책으론 안전한 도시가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주 서귀포시가 몇년 전부터 침수 피해가 자주 발생하는 서귀포시 남원읍, 표선면, 성산읍 등 동부지역 20개 지구에서 546억원을 투입해 배수로 정비사업을 내년부터 연차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별다를 게 없는 배수로 정비사업을 굳이 얘기하는 것은 강우빈도를 이전보다 상향 설계키로 했다는 데 있다.
현재 농경지·주택 침수 피해를 막기 위한 배수개선사업이나 침수·붕괴 예방을 위한 재해위험지구정비사업은 전국적으로 20년 강우빈도로 설계되고 있다. 진행중인 예래재해위험개선지구사업은 시간당 90㎜, 대정읍 인성2리와 동일2리 배수개선사업은 시간당 57.7㎜, 표선 배수개선사업은 시간당 76.0㎜의 비를 견딜 수 있게 설계됐다. 이들 사업이 마무리다고 해도 설계 이상의 비가 내린다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기자는 잦은 국지성 호우를 못따라가는 침수예방사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강우빈도의 상향 필요성을 지적해 왔다. 행정에서도 이를 모르지 않을 테고, 서귀포시가 내년부터 남원읍 등 상습 침수지역에서 추진할 13.7㎞의 배수로 정비사업은 강우빈도 설계를 지역별 여건에 따라 소하천(50~70년)에 준해 반영키로 결정했다. 최근의 국지성 집중호우로 인한 침수피해 상황이 워낙 심각해서겠지만 어쨌든 '관행'을 유독 강조하는 행정의 진일보한 선택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강우빈도 상향은 그만큼 예산이 추가되고, 국비와 지방비 등 예산확보 여부에 따라 사업추진 속도가 달라진다. 행정의 예산절충 역량에 따라 주민이 침수걱정을 더느냐, 비날씨 예보 때마다 침수를 걱정해야 하느냐가 결정된다.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받고 있고, 지역갈등 해소 등 할 일이 산더미인 취임 2개월의 양윤경 서귀포시장의 예산절충 역량이 시험대에 올랐다. <문미숙 서귀포지사장·제2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