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안 가고 거긴 왜 갔대? 그거 개 팔고, 소 똥구멍에 손 집어넣는 일 하는 거 아니야?"
반려견 문제행동을 다루는 인기 TV 프로그램을 통해 낯익은 설채현 수의사는 2004년 수의대에 입학했을 때 엄마 친구들이 그런 말을 했다고 털어놓는다. 이제는 옛말이 되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수의사는 '10년 후 전망 좋은 직업' 중 상위를 달린다. 수의사를 꿈꾸며 대학에 진학하는 청소년들도 늘고 있다. 제주대학교를 봐도 2019학년도 수시와 정시모집을 합쳐 수의예과 경쟁률이 가장 높았다.
'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 2'는 전·현직 수의사 23명이 필진으로 참여해 수의사의 일과 일상, 보람과 애환 등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현직 종사자의 관점에서 직업의 세계를 낱낱이 드러내는 시리즈로 2005년 출간된 초판을 깁고 보태 다시 나왔다. 개정판은 2006년 신설된 공중방역수의사 제도, 동물 전문 치과·안과 병원, 동물의 삶과 권리를 위해 애쓰는 동물복지지원센터, 수의 전문 변호사 등 한층 다채로워진 수의사 활동 분야와 직업군을 담아냈다.
새내기 수의사의 좌충우돌 일기로 시작된 책은 개와 고양이에서 야생동물 분야까지 임상 수의사의 세계를 펼쳐놓는다. 이어지는 더 넓은 수의사의 세계에서는 검역, 공중방역, 동물 사료, 수의전문 변호사, 동물 복지, 국제기구 분야까지 다다른다.
이 중에서 우리가 수의사를 가깝게 볼 수 있는 곳은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데리고 방문하는 동물병원이다. 사랑스러운 반려동물을 치료하는 곳이라 수의사들에게 별다른 고충이 없을 듯 하지만 그렇지 않다. 동물에게 물리는 일도 벌어지고 24시간 운영하는 곳에선 수술이나 치료를 위해 밤을 새야 할 때가 있다. 사람들처럼 고통, 죽음, 이별을 겪는 동물을 지켜봐야 하는 만큼 감정 소비와 스트레스도 심하다.
소(小)동물, 반려동물 수의사 말고 소, 돼지, 닭과 같은 산업동물 수의사들의 역할도 커지고 있다. "내가 진료한 돼지가 일반인들에게 건강한 단백질과 지방의 공급원이 될 수 있다는 생각 아래 최선을 다한다"는 최종영 수의사의 말처럼 그들은 국민의 식탁과 영양을 책임진다. 사회와 산업 발달에 따라 산업동물 수의사들은 경제적·산업적 관점에서 진단을 내리고 예후 판단을 해주는 일이 중요해졌다. 부키. 1만4800원. 진선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