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현 사진집 '이카이노'에는 차별과 멸시를 견디며 새로운 삶을 꿈꿨던 재일 제주인들의 일상이 담겨있다.
오사카 재일 제주인 밀집지
1965~70년 이카이노 촬영차별.멸시 견딘 사람과 풍경
이카이노(猪飼野). 우리말로 풀어내면 '돼지를 기르는 들판'이란 뜻이다. 그곳에 제주출신 재일동포들이 몰려 살았다. 재일 김시종 시인은 1978년 펴낸 '이카이노 시집'에 실린 '보이지 않는 동네'에서 이런 노래를 불렀다. '거기엔 늘 무언가 넘쳐나/ 넘치지 않으면 시들고 마는/ 일 벌이기 좋아하는 조선 동네./한번 시작했다 하면/ 사흘 낮밤./ 징소리 북소리 요란한 동네./지금도 무당이 날뛰는/ 원색의 동네.'
일본 오사카 이쿠노구 일부 지역을 일컫는 이카이노는 지도상에 없는 지명이다. 1920년대 오사카가 공업도시로 발전할 무렵부터 곳곳에 들어선 공장의 직공 중에는 바다를 건너온 제주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의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 출신 조지현 작가(1938~2016)도 4·3의 광풍을 피해 고향을 떠나 1948년 오사카에 짐을 풀었다. 감수성 많던 소년기에 그는 이카이노에서 비애를 느꼈다. 그 기억은 치유되지 못한 채 오랜 기간 마음 한 구석에 아픔과 굴욕으로 남았다.
그가 1965년부터 1970년까지 5년에 걸쳐 이카이노를 기록한 건 '찢어졌던 기억'을 되돌아보는 작업이었다. 이카이노 사람과 거리에 카메라를 맞추는 일은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를 묻는 시간이었다.
2003년 일본 신간사(新幹社)에서 나왔던 그의 흑백 사진집 '이카이노-추억의 1960년대'가 김이향·안해룡 번역으로 한국어로 출간됐다. '이카이노-일본 속 작은 제주'로 이름을 바꿔단 사진집에는 60년대 이카이노의 풍경이 빛바랜 사진처럼 흩어져있다.
이카이노는 '자이니치'의 현실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구조적 차별과 멸시, 살 권리마저 빼앗겼던 노동 시장의 따돌림이 존재했다. 하지만 사진집에 등장하는 이들의 표정과 몸짓은 평안해보인다. 밑바닥의 삶을 견뎌내야 하는 간절함이 평온한 얼굴로 배어났는지 모른다.
서울 강남구 스페이스22를 찾으면 '이카이노-일본 속 작은 제주'에 담긴 사진을 볼 수 있다. 전시는 3월 5일까지. 도서출판각. 3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