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희의 백록담] 카메라로 기록한 '신화의 섬' 마냥 놔둘 건가

[진선희의 백록담] 카메라로 기록한 '신화의 섬' 마냥 놔둘 건가
  • 입력 : 2019. 03.25(월)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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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음력 2월 보름. 그는 이틀 밤 사흘 낮을 북제주군(지금의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바닷가에서 보냈다. 안사인 심방(1990년 작고)을 따라나선 길로 무혼굿 현장을 처음 본 날이었다. 여전히 갯바람이 매서웠던 그곳에선 자그마한 천막을 쳐놓고 바다에 빠져 죽은 사람의 넋을 건져내 극락으로 보내주기 위한 굿판이 벌어졌다. 그는 한창 때의 아들을 먼저 보낸 노모와 가족들의 사연 때문에 무혼굿이 열리는 동안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때의 풍경은 그의 글과 사진으로 엮은 '아름다움을 훔치다'(2004)에 실려있다. 그는 우리의 전통문화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그것을 사진에 담아놓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방방곡곡을 헤매며 예인들을 만났고 제주 안사인 심방 등 '소리와 춤으로 마음을 풀어주던' 11명을 그 책에 소개했다.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선구자로 꼽히는 김수남(1949~2006) 이야기다. 사진기자였던 그는 미신타파라는 이름으로 굿을 금지하던 시절부터 굿판을 찾아다녔다. 우리나라 굿 작업을 마무리한 뒤 1980년대 후반부터는 아시아로 발길을 돌렸다. 아시아 대륙의 오지와 섬을 떠돌아 다니며 언젠가 맥이 끊길지 모르는 소수 민족의 문화와 삶을 카메라로 붙잡았다.

스무권 짜리 '한국의 굿'을 내는 등 미신으로 여겨졌던 굿을 한국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평가받게 만들고 일본, 인도, 베트남 등 지역을 초월해 살아있는 문화의 현장을 기록해온 그는 가고 없지만 사진은 남아있다. 제주는 물론 아시아의 민속을 탐구할 수 있는 귀한 자료다. 2017년 1월, 그의 유족들이 제주도에 기증한 작품은 그래서 소홀히 여길 수 없다.

기증 자료는 작가 사인이 들어있는 사진 146점과 카메라, 메모 수첩 같은 유품 62점 말고도 사진 디지털 파일 17만점이 포함됐다. 2019년 2월 기준으로 제주연구원 제주학연구센터 아카이브 시스템에 구축된 논문, 고문헌, 구술 자료, 사진 등이 모두 합쳐 4만6990건이 넘는다고 하는데 그에 비할 때 고향 제주에 내놓은 김수남 관련 기증품은 엄청난 규모다.

하지만 이들 기증품은 2017년 12월 산지천갤러리 개관전으로 공개된 일을 제외하면 수장고에 잠들어 있다. 근래 산지천갤러리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지만 그곳에 놓인 김수남 기증 자료의 안부를 물었다는 말은 여태 듣지 못했다.

"문화와 예술은 그 속성상 단기간에 효과를 볼 수 없습니다. 떠났던 치어가 돌아와 산란을 하듯이 문화에도 기초 투자와 저변 확대의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15년 전 김수남 사진가가 '아름다움을 훔치다'에 써놓은 글은 지금도 유효해보인다. 엊그제 문을 연 문화 공간에 손님이 들지 않는다고 하루아침에 틀을 바꾸려는 게 오늘날 문화 행정의 모습이 아닌가. 기회 있을 때마다 '신화의 섬', '신들의 고향', '민속문화의 보고'를 수식어처럼 붙이고 콘텐츠 개발 운운하지만 정작 '제주의 신들'을 증거하는 김수남 사진에는 무심하다. 제주도는 이제라도 '조건 없이' 기증받았던 김수남 자료를 연구하고 활용해 제주도민들에게 되돌려주기 위한 걸음을 떼어놓아야 한다.

<진선희 교육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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