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새콤함 끝 단맛처럼 고통 뒤편에 희망

[책세상] 새콤함 끝 단맛처럼 고통 뒤편에 희망
권여선의 신작 장편소설 '레몬'
  • 입력 : 2019. 05.03(금) 00:00
  • 백금탁 기자 haru@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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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죽인 범인 찾는 동생
낙원·복수의 혼재 '노란빛'

"내 삶에도, 아무리 찾으려 해도, 지어내려 해도 없는 건 없는 거라고. 무턱대고 시작되었다 무턱대고 끝나는 게 삶이라고."

'레몬, 레몬, 레몬, 복수의 주문이 시작되었다.'

'누군가 봄을 잃은 줄 모르고 잃었듯이 나는 내 삶을 잃은 줄도 모르고 잃었다.'

2016년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로 동인문학상을 받은 권여선이 삶의 이해할 수 없음을 서늘한 문장으로 날카롭게 그려낸 신작 '레몬'을 냈다. 같은 해 계간 '창작과 비평' 창간 50주년을 기념해 발표했던 소설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를 수정·보완해 새롭게 선보인 작품이다. 위의 글들은 책의 내용과 표지 글의 일부로 무겁고 섬뜩하다.

작가는 2002년 한·일 월드컵으로 떠들썩했던 여름, '미모의 여고생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이를 둘러싼 인물들의 삶의 방향을 깊이 있는 문장으로 풀어낸다.

이 사건의 중심에는 레몬으로 대표되는 '노란빛'이 지배적이다. 레몬은 화자 다언이 숨진 친언니 보다 평소 따랐던 여고시절 문예반 선배 상희가 썼던 시에 등장하는 단어다. 또 다언이 한민우의 집에서 함께 먹었던 따뜻한 계란프라이의 애틋한 노란빛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다. 그리고 그 노란빛은 언니 해언이 죽기 직전 입고 있었던 원피스의 색깔이기도 하다.

이처럼 다시 오지 않을 좋았던 시절을 상징하는 레몬의 노란빛은 다언으로 하여금 비틀린 자력 구제로서의 복수를 결심하게 만드는데 여기에 이 소설의 반전이 숨어 있다. 마치 눈이 감길만큼 새콤한 레몬의 맛 뒤에 배어나는 단침의 맛처럼 우리네 삶 또한 고통의 뒤편에 노란빛의 희망을 품게 된다는 메시지다. 그리고 글을 읽다보면 세월호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과 오버랩 되는 경우가 많다.

소설 '레몬'을 통해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작가의 말이다.

"이 세상에 어떤 생명 하나가 그게 날파리 한마리라 하더라도, 평범하게 태어나, 평화롭게 살다, 평온하게 죽은 적이 있기를, 단 한번이라도 한번만은 그 불가능한 삶이 존재했기를 기도하게 되는 이 마음은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 생각합니다." 창비.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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