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관광 대안을 찾아서] (3)북촌한옥마을

[과잉관광 대안을 찾아서] (3)북촌한옥마을
관광객에 내몰리는 주민들… 그늘진 '양반 동네'
  • 입력 : 2019. 10.24(목) 00:00
  • 이상민 기자 has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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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급격히 늘어나는 관광객에 주민들 피해 호소
서울시, 관광 허용시간 지정·시행 등 8대 대책 마련
주민 "강제성 없어 효과 미미"… 인력 부족도 문제
과잉관광 방지 관광진흥법 개정안 통과 여부 관건

북촌은 청계천과 종로의 위쪽이라는 뜻으로 조선왕조 때부터 왕족, 양반 관료 출신들이 살았던 고급 가옥이 대부분이라 일각에서는 '양반촌', '양반 동네'라고도 불렸다.

마을 지킴이가 '조용히 해주세요' 문구가 외국어 등으로 적힌 피켓을 들고 서 있다. 김현석기자

북촌 지역은 1920년대까지 큰 변화가 없었지만, 1930년대 서울의 행정구역이 확장되고 도시구조도 근대적으로 변형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주택경영회사들이 북촌의 대형 필지와 임야를 매입해 그 자리에 중소 규모의 한옥들을 집단적으로 건설했는데 현재 한옥들이 밀집돼 있는 가회동, 삼청동, 계동 등의 한옥 주거지들이 모두 이 시기에 형성됐다.

이후 1992년 가회동이 한옥 보존지구에서 해제돼 한옥 이외에도 일반 건물들이 빠르게 들어서며 난개발이 진행되자 서울시는 2006년 '북촌 장기 종합대책'을 수립했다. 서울시는 한옥을 매입하고 박물관을 설립하는 등 장기적인 보존 대책을 진행했으며, 이후 관광지로 급격히 떠오르게 됐다.

북촌 한옥마을을 찾은 수많은 관광객들

▶늘어나는 관광객에 주민 피해 호소=21일 오전 북촌 한옥마을. 마을 입구에 위치한 한복 대여 가게에는 수많은 관광객이 입을 한복을 고르며 들뜬 얼굴로 대기하고 있었다. 마을 골목으로 들어서자 한복을 입은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한옥을 배경으로 사진이 잘 찍히는 명당자리에는 관광객들이 줄을 서며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한 지역 주민이 주차된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마을 골목을 지나려고 하자 운전자는 창문을 열고 잔뜩 찡그린 얼굴로 비켜달라는 손짓을 하며 자동차를 운행했다. 관광객들은 차가 다가온 지도 모른 채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어 뒤늦게 길을 비켜줬다. 1분도 안 걸리고 지날 수 있는 거리를 자동차는 5분여가 지나서야 겨우 나갈 수 있었다.

주민 김모(52)씨는 "마을을 점령하고 있는 관광객들로 인해 차가 지나가려면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며 "또 개인 소유 집인데도 관광객들이 불쑥 문을 열고 들어오려고 하기도 해 당황스러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북촌 한옥마을이 SNS 등을 통해 유명세를 타면서 지난 2016년 268만명에 이르던 관광객 수는 2017년 368만명, 지난해 470만명으로 매년 100만명 이상씩 늘고 있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쓰레기 무단 투기, 소음 공해, 사생활 침해 등의 문제로 지역 주민들은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북촌 한옥마을 전경

▶'투어리스티피케이션' 현상=이곳에서 30년 넘게 살고 있다는 주민 강모(75)씨는 "시간대와 상관없이 마을을 점령하고 있는 관광객들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 크다"며 "변해버린 마을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하는 이웃들도 꽤 있다"고 아쉬워했다.

북촌 한옥마을이 관광명소가 되면서 주민들이 피해를 보고 다른 지역으로 내몰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을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이라고 부른다. '관광지화 되다'라는 의미의 영어 'touristify'와 땅값과 임대료가 올라가면서 기존 상인이나 세입자 등 원주민들이 쫓겨나는 현상을 뜻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합친 단어다.

실제로 서울시에 따르면 북촌 한옥마을을 이루고 있는 인근 삼청동과 가회동의 인구는 지난 2012년 9276명이었으나 2019년 6월에는 7502명으로 19.1%나 감소했다. 같은 기간 종로구 전체 인구 감소율이 6.2%인 것에 비해 무려 3배가 넘는 수치다.

마을 벽에 설치된 현수막. 관광 허용시간과 일요일은 쉰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북촌 한옥마을 주민피해 개선 대책안 마련=관광객들로 인한 지역 주민 피해가 심각해지자 행정이 대책 마련에 나섰다. 서울시와 종로구청 등은 2017년 실시한 '주거지역 관광명소 주민피해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해 6월 북촌마을 주민 피해 최소화를 위한 8대 대책을 마련했다.

내용을 살펴보면 ▷관광 허용 시간 지정·시행 ▷단체 관광객 방문 시 가이드 동행 안내 시스템 도입 ▷관광버스 불법 주정차 집중단속구역 지정 ▷쓰레기 수거 횟수 확대 및 전담 청소인력 신규 투입 ▷개방화장실 확대 ▷관광객 금지행위 안내판 설치 ▷관광 가이드 대상 사전교육 ▷주민 주도 관리인력(마을 지킴이) 양성 등이다.

북촌 한옥마을 골목으로 깊게 들어가자 마을 지킴이가 '조용히 해주세요'라는 문구가 외국어 등으로 적힌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마을지킴이는 관광객들이 큰 목소리로 말할 때면 피켓을 들고 보여주며 소음 공해를 방지하기 위해 분주히 돌아다녔다. 일부 한옥 대문에는 조용히 해달라는 안내장이 부착돼 있었으며, 마을 전신주와 벽 등에는 마을 관광 허용시간과 일요일은 쉰다는 문구가 적힌 안내판과 현수막 등이 설치돼 있었다.

서울시와 종로구청 등이 대책안을 마련하고 운영하고 있지만, 강제성이 없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관광버스가 버스 정류장 자리에 정차하고 있어 마을버스가 관광버스를 비켜 돌아가는 모습

지역 주민 박모(63)씨는 "청소 인력 추가 등으로 쓰레기 문제는 개선이 됐지만 관광 허용시간을 지정해도 강제성이 없으니 무시하고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여전히 많다"며 "지킴이가 근무하는 시간 외에 오는 관광객들은 관리가 안 돼 여전히 소음공해 문제가 발생한다"고 토로했다.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나오자 마을 입구 인근 도로 가장자리에는 관광버스 4~5대가 자리를 잡고 관광객들을 태우거나 내리고 있었다. 관광버스가 버스 정류장 자리에 정차하고 있어 마을버스가 관광버스가 자리를 비켜줄 때까지 기다리거나 돌아가서 세우는 장면도 목격됐다. 또 관광객들이 무단횡단 등으로 통행하는 차량을 막고 있어 교통체증 현상까지 나타났다.

행정은 북촌 한옥마을 입구 인근 도로를 불법 주정차 집중단속구역으로 지정하고 단속을 실시하고 있지만 역부족인 실정이다.

종로구청 관광과 이은삼 과장은 "강제적으로 마을 방문시간을 지정할 경우 헌법 제37조 제2항 일반적 행동자유권 침해에 해당돼, 조례 등으로 마을 방문 시간 등을 제한하는 것은 불가능한 현실"이라며 "마을 방문은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그리고 일요일을 '골목길 쉬는 날'로 운영하고, 마을 지킴이를 통해 홍보 및 계도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관광버스 불법 주정차 문제는 지역 주민에게 불편을 초래하여 단속을 강화하고 있으나 단속만으로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관광진흥법 개정안 통과 여부가 관건=최근 제주도, 서울 등 일부지역에서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으로 인한 지역 주민의 피해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현행법에서는 '지속가능한 관광'을 환경적 측면으로만 규정하고 있어, 이를 경제적·사회문화적·환경적 지속성 개념으로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정세균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서울 종로구)은 지난 7월 오버투어리즘 방지를 위한 '관광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재 개정안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통과하고 본회의 통과만을 남겨두고 있다.

개정안에서는 시·도지사나 시장·군수·구청장 등 지방자치단체장은 수용 범위를 초과한 관광객 방문으로 인해 자연환경이 훼손되거나 주민들의 평온한 생활환경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주민 의견수렴을 거쳐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지자체장은 특별관리지역에 대해 관광객 방문 시간 제한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은삼 관광과장은 "개정안이 통과되면 정주권 보호가 필요한 지역을 특별관리구역으로 지정, 마을 방문시간 제한 및 주거지 이면도로 관광버스 진입 제한 등을 검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문체부와 서울시 그리고 유관기관 등과 적극적으로 협력해 주민 피해 대책 마련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민·김현석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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