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식민과 분단 온 몸으로 살아낸 사람들

[책세상] 식민과 분단 온 몸으로 살아낸 사람들
강상중 등 편저 '재일 1세의 기억'
  • 입력 : 2019. 11.22(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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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조선인 1세 50여명
가혹한 역사 생생한 육성

"내가 마흔한 살 때, 둘째 딸을 낳았어요. 이때는 생활이 어려워서 고기가 먹고 싶어도 먹을 수가 없었어. 나에 대해서는 말을 하려고 해도 말로 다 할 수가 없어."

박승자 할머니를 인터뷰한 해는 2007년 12월. 제주자치도가 출범한 직후였지만 그는 출생지를 '제주도 북제주군'으로 기억했다. 1922년 3월, 여덟 남매의 장녀로 태어난 그는 열세살 때 오사카로 건너갔다. '메리야스' 공장에서 일하다 제주로 돌아와 열여덟 살에 결혼한 뒤 스물한 살때 다시 일본으로 향했다. 해방 직전에 고향으로 왔지만 4·3을 피해 오사카로 도망갔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평생 일을 했다.

지나온 생을 말로 다 풀어내지 못하는 재일1세가 비단 그뿐일까. 조선과 일본을 넘나들었던 그들의 몸에는 가혹한 역사의 무늬가 새겨져있다. 유랑과 이산, 차별과 빈곤, 해방과 분단 등을 살아내야 했던 그들의 지난 시절을 떠올려 보시라 .

일본 게이오대학 오구마 에이지 교수와 재일2세인 도쿄대 강상중 명예교수가 편저를 맡은 '재일 1세의 기억'엔 그들의 육성이 담겼다. 민족수난의 시기에 이국땅에서 생을 견뎌온 재일 한국·조선인 1세의 생생한 체험을 담아놓았다.

기록자들이 만난 재일1세는 50명이 넘는다. 취재일, 출생지, 현주소, 생년월일, 약력 소개에 이어 그들이 저마다 들려주는 사연이 펼쳐진다. 제주에서 태어났거나 제주와 인연이 있는 인물도 들어있다. 양의헌(영화로 만들어진 해녀의 반평생), 김용해(민족학급과 함께한 36년), 김시종(조선 현대사를 산 시인), 고태성(의사가 되려고 했는데, 민족학교 교사로), 한재숙(영혼의 숨결, 음악을 만나다), 고기수(한글소프트 개발의 선각자) 등이다.

일본 사회의 이방인이었던 재일 1세와 달리 3~4세는 언어·문화적으로 일본인과 큰 차이가 없다. 일본인과 혼인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국적법이 남녀양계주의로 변하면서 재일 6~7세가 있다고 해도 극소수일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재일'은 일본 내 차별의 대상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그 존재는 사라지지 않을 거라 말한다.

강상중은 재일 1세의 증언을 두고 "쓸모없는 잡담과 정반대되는 생명의 언어가 깃들어 있다"며 "나의 피가 되고 살이 되었던 역사의 일부를 말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고 했다. 제주학연구센터 제주학총서로 고민정·고경순씨가 우리말로 옮겼다. 도서출판문. 3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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