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일본과 두 개의 조선, 그 틈새에 스민 감각들

[책세상] 일본과 두 개의 조선, 그 틈새에 스민 감각들
김시종의 '이카이노 시집' 등 번역 합본 출간
  • 입력 : 2019. 12.27(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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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의 어디냐고?/ 그럼, 이쿠노(生野)라면 알아들을라나?/ 자네가 거부했던 무엇일 테니/ 꺼림칙한 악취에게나 물어보게나./ 물크러진 책상은 지금도 여전할 거야./ 끝내 열지 못한 도시락도./ 빛바랜 꾸러미 그대로/ 어딘가 틀어박혀 숨어 있을 거야.'

재일 김시종 시인의 '이카이노 시집'(1978)의 첫머리에 실린 '보이지 않는 동네'의 일부다. 시집은 일본 오사카에서 재일조선인들이 집단촌을 이루고 살아가는 모습을 그렸다. 시인은 '이카이노 시집'을 두고 '삶의 후반기'가 시작되는 작품집이라고 했다. 독자들에겐 김시종의 문학과 사상의 궤적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창작집일 듯 싶다.

'이카이노 시집'을 시작으로 '계기음상(季期陰象)'(1992), '화석의 여름'(1998) 등 일본과 두 개의 조선, 그것들 사이의 틈새에서 형성된 감응과 감각 등에 손을 내밀어온 김시종의 문학 세계를 살필 수 있는 세 권의 시집이 우리말로 번역 출간됐다. 이들 시집은 이진경·심아정·카게모토 쓰요시·와다 요시히로 네 명이 역자로 참여했고 한 권으로 합본해 묶였다.

'계기음상'은 독립적인 단행본으로 나온 적이 없는 시집이다. 대체로 '화석의 여름'과 '광주시편'(1983) 사이에 쓰여진 시들로 이루어졌다. '화석의 여름'은 4·3의 피바람을 피해 제주를 떠나 밀항자로 상륙한 날(6월 6일) 등 시인의 삶에서 결정화된 상징적 시간이 스며 있다.

말미엔 시인과의 대담을 실었다. 초현실주의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았다는 시인은 말한다. "현대에 들어와서 시가 외면당하는 이유는 필자들이 독자들에게 보내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자기만의 세계에 보내기만 할 뿐. 그리곤 그것을 두고 순수함이라고 하니 그건 틀린 소리지요. 시라는 것은 만인 공통의, 인간의 본성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에요." 도서출판 b. 1만5000원.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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