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은 단성화산… 몽고어론 '작은 동산' 의미 담겨용암대지 야생의 삶 '땅이 척박하여 백성들이 가난'
#한라산이 제주도
'제주도가 한라산이고 한라산이 제주도'라는 말은 섬과 산이 곧 하나의 동일체로 보는 제주인의 시각인데 제주는 융기된 화산섬인 것이다. 바다에서 보면 제주도는 경사가 낮은 삼각형 모양이다. 제주도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오름, 현무암, 동굴, 돌담이라는 것만 봐도 제주도 지형 자체가 화산 활동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제주도 모양은 장축으로 동-서(동북동-서남서) 방향 길이가 약 74㎞이며, 단축이 북-남(북북서-남남동)으로 약 32㎞이다. 한라산은 남·북 사면의 경사가 급하고, 동·서 사면은 경사가 완만하게 누운 고구마 형상과 비슷하다. 한라산 아래 등고선을 따라 약 360여 개의 분석구(噴石丘, cinder cone)와 6개의 응회구·응회환·용암돔 등이 분포하는데 사람들은 이를 오름이라고 부른다.
이 오름이라는 말은 몽고어로는 '작은 동산'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이 용어가 아마도 원나라 지배기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름을 최근까지도 기생화산(寄生火山, parasitic volcano) 즉, 본 화산체 옆에서 분화하는 작은 규모의 화산활동에 의해 생성된 기생화산체로 부르다가 지금은 하나의 독립된 분화에 의해 형성된 화산이라는 뜻인 단성화산(單成火山, monogenetic volcano)이라 부르고 있다.
한라산은 제주도 평원의 중앙에 우뚝 서서 많은 오름을 거느린 것처럼 제주도 어디서든 보인다. 옛날 몽고 사람들은 한라산(漢나山)을 말할 때 '할라'라는 의미를 "저 멀리 구름 위로 우뚝 솟아있는 검푸른 산"이라고 했다(박기봉, 2016). 여말선초(麗末鮮初)의 선비로 조선 태종 때 대사헌을 지낸 권근(權近, 1352~1409)의 시에도 "푸르고 푸른 한 점 한라산 멀리 넓은 물결 아득한 사이에 있네(蒼蒼一點漢나山 遠在洪濤浩渺間)"라고 하여 몽고의 느낌으로 표현하고 있다. 제주인도 예외는 아니다. 제주굿 본풀이에도 한라산을 일러 '할락산·할로영산·할로영주·하로산·하로하로산'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 할라산(한라산)이 몽고 지배기와 관련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제주도의 화산활동
제주도는 백록담 분화구를 중심으로 여러 단계에 걸친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화산도로 수백 번 용암이 흐르면서 차곡차곡 쌓여 1950m의 한라산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정설이었으나, 조심스럽게 "제주도는 해저에서 화산이 분출하여 용암과 화산쇄설물이 지속적으로 쌓여 원뿔[圓錐] 모양을 이룬 성층화산(成層火山, stratovolcano)이 아니라, 상승하는 마그마에 의해 돔(dome) 모양으로 솟아오른 융기화산(隆起火山) 지대로, 후빙기(後氷期, postglacial age)에 들어와 해침(海浸)에 의해서 침수되어 만들어진 침수융기화산지대의 섬이라는 주장도 있다(윤선, 정차연, 송시태, 현원학, 2003).
돌담 경관은 혹독한 환경과 싸워온 사람들의 결과물.
이들에 의하면 한라산은 융기산체로서 이 융기는 백록담조면암군을 형성시킨 조면암 마그마가 흘러나와 만들어져 그 융기량은 최소한 1000m 이상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제주도 주변은 8000년~1만년 전에는 광활한 육지였는데 한라산은 이 육상에서 만들어진 산체(山體)로서 그 이후 해수면의 상승에 의하여 침수(浸水)된 침수산체(浸水山體)라고 한다. 다시 말해 제주도 지질은 표생쇄설암(表生碎屑岩, epiclastic rock), 즉 '기존 암석의 쇄설물이 굳어 지표에서 형성된 암석 또는 풍화와 침식으로 생긴 쇄설물'로 구성된 퇴적암이 광범위하게 분포된 고기(古基) 하성층(河成層)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론은 표생쇄설암을 공급하는 근원지가 어디이고 그 쇄설암괴덩어리를 운반했던 에너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야만 하는 과제를 남겼다(제주도,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 2006).
제주도 돌담의 근원 마그마가 굳은 용암에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에 제주도 화산활동의 시기 구분은 매우 중요하다. '제주도 지질여행'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약 188만 년 전 뻘과 모래로 된 광활한 남해의 벌판 한 곳에서 용암이 분출하기 시작하였다. 제주도의 해수면 44~258m 아래에는 모래와 점토로 구성된 약 150m 두께의 U층(퇴적층)이 나타난다. 이 U층은 해수면이 가장 낮을 때 육지와 연결되어 있었던 제주도 초기의 환경을 알려주는 지층이다. 화산 폭발은 땅속의 마그마가 그 U층을 뚫고 나오면서 바닷물과 만나 강력한 폭발을 일으키며 다량의 화산쇄설물로 이루어진 수성화산체를 만들었으며 오랜 시간 반복되는 해수면 작용으로 인해 퇴적층이 쌓이면서 서귀포층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제주도의 화산 활동은 바로 이 서귀포층을 중심으로, 크게 퇴적동 시대 화산활동기인 약 188만년 전~50만 년 전과 퇴적 이후 화산활동기인 약 50만 년 전~홀로세까지로 구분된다. 첫째, 퇴적동 시대 화산활동기인 약 100만 년 전에는 알칼리 현무암질 용암이 최초로 육상으로 흘렀으며, 이와 함께 일어난 수성화산 활동과 그 이후 분화된 알칼리 계열 용암류의 돔(dome)상 분출, 그리고 알칼리 계열 용암류의 분출로 구분되는데 이는 서귀포층이 퇴적되는 동안에도 국지적이고 간헐적인 화산활동이 있었다. 오늘날 제주도 지표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암석은 약 85만 년 전~80만 년 전의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가파도, 산방산, 문섬 등 제주도 남부 지역에 주로 분포하는 조면암으로 이루어진 용암돔 등이다.
둘째, 퇴적 이후 화산 활동기는 서귀포층이 종료된 이후 제주도 전역에 걸친 활발한 육상화산활동으로 정의된다. 대부분의 용암을 지금부터 약 40만 년 전에서 2만 년 전 사이에 분출했는데, 특히 지표의 대부분은 약 10만 년 전부터 분출한 용암에 의해 덮혀진 것이다(한국지질자원연구원·제주발전연구원, 2013). 또 역사시대였던 고려의 기록에는 1002년과 1007년에 걸쳐 두 번의 화산분출이 있었다고 했으나 정확한 위치를 알 수가 없다.
#척박한 대지, 야생의 파람
전통시대에는 제주도를 일러 '지척빈민(地瘠民貧, 땅이 척박하여 백성들이 가난하다'라는 소위 제주도척박론이 대세를 이루었다. 암반으로 이루어진 땅에다가 그것을 개척할 노동력과 쇠 도구가 부족했고, 때도 없이 찾아드는 가뭄과 탐관오리의 학정(虐政)은 제주도를 민중 저항의 섬으로 바꿔 놓았다. 시대가 상황을 만든다고 했다. 농토가 어렵다 보니 섬이 택한 것은 목축이었고, 부족한 식량을 마련하기 위해 산과 바다에서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였으며, 물장구를 치는 어린 여자아이 때부터 시퍼런 바닷속을 오가는 잠녀가 돼야만 했다. 대지가 온통 용암으로 뒤덮어 있어 밭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기에 당시의 사람들은 일벌레로 살다 지치면 섬을 탈출하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 앞에 펼쳐진 돌담의 경관은 혹독한 환경과 싸워온 제주인들의 수천 수백 년의 시간이 녹아든 결과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지에 새겨진 아름다움을 보면서도 용암대지에서 흘렸던 눈물의 무게를 알 리가 없다. <김유정 미술평론가(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