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우의 한라칼럼] 이 또한 지나가겠죠

[송창우의 한라칼럼] 이 또한 지나가겠죠
  • 입력 : 2020. 03.17(화) 00:00
  • 강민성 수습 기자 kms6510@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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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형, 오랜만에 다시 글을 쓰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4년 전 뜨겁게 내리쬐던 여름 끝자락이었습니다. 그 때를 떠올리기도 싫지만 밀려들어 오는 관광객과 제주이주열풍으로 농경지까지 건물이 들어서는 막장개발과 부동산 투기로 숨이 탁탁 막힐 정도로 우리를 힘들게 할 때였죠. 지금도 곶자왈이 파헤쳐지고, 넘쳐나는 하수와 쓰레기 그리고 제2공항 문제로 갈등의 연속입니다.

그렇고 보면 우린 언제나 힘든 시기를 지내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행복이 돈이라는 등식으로 변한 사회에서 지난 세월보다 나아졌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으니까요. 힘들고 어려운 것은 우리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풀과 나무는 물론이고 이들에 의존하는 동물도 상황은 비슷할 겁니다. 어머니처럼 자신의 몸을 모두 내맡기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으며 온갖 먹을 것을 내줬던 대지도 허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 읽었던 시가 떠오릅니다.

'겨울이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하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빈약한 삶을 이어 주었다.'(T.S 엘리엇 황무지 중에서)

그 시절 시인이 길고 난해한 단어로 이야기하고자 했던 뜻을 제대로 모르겠지만 하얀 눈이 없던 제주는 참 힘들었을 것입니다. 땅은 눈에 덮인 긴 겨울 침묵의 시간을 보내려고 했으나 자신의 몸을 돌볼 겨를도 없이 식물과 동물, 인간에게 다시 뜯기고 있습니다. 그렇게 할퀸 겨울의 자락까지 떠안은 봄은 어떠하고요. 이맘 때쯤에는 겨우 싹이나 자랄 정도였던 잡초들은 벌써 웃자라 농부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눈이 내리지 않는 겨울, 뜨거워지는 태양, 예전 같지 않는 기후 때문이라고 여기면서도 어쩔 수 없다며 받아들여야 할까요.

K형!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입니다. 형과 함께 웃기는 이야기라며 쓰던 말이 또 다시 떠오릅니다. 사람과 돈과 정보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국경을 넘나드는 세계화는 바이러스도 함께 넘나들고 있습니다. 열렸던 국경은 코로나19가 다시 막아버리고 있습니다.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침묵이 깊게 내려앉았습니다. 도심은 황량하기까지 합니다. 스멀스멀 옆으로 다가오는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감 때문에 서로에 대한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흩어져야 산다는 말이 유행하면서 함께 밥을 먹을 수는 없는 것은 물론 대화를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있습니다. 빈부, 종교적 믿음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물론 영악한 인류는 이를 극복하겠죠. 하지만 이들의 습격은 계속될 것입니다. 지구온난화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이번 바이러스도 기후변화에 빨리 대응하라는 지구의 몸부림치는 신호일 수도 있고, 이를 대비하지 못하면 인류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지 않을까요.

K형! 세상만물은 들숨과 날숨으로 생명을 유지합니다. 코로나19로 힘들지만 크게 숨을 내쉬며 하늘과 들녘을 보면 제 향기를 잃기는 했지만 찬란한 봄이 다가와 있습니다. 이 또한 지날 갈 것입니다. 괜한 걱정을 말씀드린 것 같습니다. 몸 건강하십시오. <송창우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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