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의 편집국 25시]영화보다 나은 결말

[이상민의 편집국 25시]영화보다 나은 결말
  • 입력 : 2020. 04.02(목) 00:00
  • 이상민 기자 has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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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컨테이젼은 감염병 공포와 급변하는 개인의 삶, 난무하는 가짜 뉴스까지 감염병 사태 속에 나타나는 사회현상을 잘 묘사한 작품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수작이라고 보기엔 마뜩지 않은 구석이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질병본부의 치버 박사는 도시를 봉쇄한다는 소식을 미리 알고 아내에게 전화로 '빨리 탈출하라'고 다그치는데, 이 모습을 건물 청소부에게 들키고 만다. 그리고 영화는 둘 사이 갈등을 치버 박사가 자신의 몫으로 받은 백신을 청소부 아들에게 주는 것으로 매듭 짓는다. 치버 박사가 낳은 윤리적 문제는 둘의 화해로 훈훈하게 포장됐다. 그래서일까. 영화가 끝난뒤 밀려드는 허탈함과 분노는 오로지 내 몫이다. 만약 우리가 관객이 아니라 영화에 등장하는 시민이었다면 어땠을까. 이런 결말은 바라던 결말이 아니다.

최근 제주에서 한 공무원이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자의 실명, 동선이 담긴 공문서를 외부로 유출하는 일이 있었다. 당시는 보건당국이 확진자의 동선을 발표하기 전이었다. 제주도가 이 공무원을 고발한다고 하자 온라인에선 찬반 논란이 일었다. 처벌 반대 쪽은 보건당국 발표 시점보다 결과적으로 빨리 동선이 공개됐으니 오히려 상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식이었다. 당황스럽다. 만약 그 공무원이 처벌을 무릅쓰고 일찍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신념 아래 그런 일을 벌인 것이라면 인터넷 게시판이라든가 보다 더 공개된 방식을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공무원은 자신을 아는 이에게만 공문서를 유출했다. 이후 이 문서는 SNS를 타고 확산됐다. 공무원의 행동은 직업적 특권으로 얻은 정보를 끼리끼리 나눠 갖은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상을 줘야하는 가. 우리마저 영화처럼 문제를 덮어버리면, 우린 모두 영화 속 치버 박사와 청소부처럼 공범이 된다. <이상민 행정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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